거기 사는 백성이 강한지 약한지, 그 수는 많은지 적은지, 그 땅이 좋은지 나쁜지, 그들의 도성이 견고한지를 알아보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산물인 과일을 가져오도록 명령하였다.
정탐꾼들은 그 땅을 40일간 두루 살피고 돌아와서 보고하였다. 그들 보고의 공통점은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이었고 도성은 견고하였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장대같이 큰 거인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탐꾼들의 보고가 상반된 것이다. 똑같은 현장과 사건을 가지고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 것이다.
열 사람은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 꼭 메뚜기 같이 보여 도저히 그들을 쳐서 이기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잡혀서 노예가 될 것이라는 소문을 퍼뜨렸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은 술렁대는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우리가 능히 이길 수 있으니 올라가 점령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믿음 있는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으로. 믿음 있는 사람은 상대방이나 자신을 과대평가하지도 또한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이에 반해 믿음 없는 사람은 상대방(문제)을 과대평가하고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패배주의자가 된다.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노예근성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 있는 히브리 백성은 430년간 애굽의 노예로 살아왔다. 그렇기에 그들 속 깊이에 패배주의가 깔려있었다.
열 사람은 그 견고한 도성과 장대 같은 거인만 보았지 역사를 섭리하시는 절대자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 이들의 마음은 노예근성으로 가리어져있어 초월적인 것, 영원한 것, 절대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나타난 현실만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웠고 앞이 캄캄하여 지도자 모세를 원망하며 백성들을 패배주의에 몰아넣고 있었다.
두 사람 갈렙과 여호수아도 똑같이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다른 것은 도성보다 크고 성벽보다 높고 그 거인보다 강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본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에는 승리의 확신이 있었다. 결국 그들만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었다.
그렇기에 신앙의 사람은 “우리는 할 수 있다”고 말하고 불신앙의 사람은 “우리는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신앙의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불신앙의 사람은 하나님을 제외시킨다. 신앙의 사람은 하나님을 모든 사건의 출발점으로 삼아 도전한다. 그러나 불신앙의 사람은 모든 사건을 정지선으로 삼고 낙심한다.
세계적인 기독교를 만드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바울은 세상을 이기는 길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기고도 남습니다.”(롬8:37) “내게 힘을 주시는 분을 통해서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빌4:13)
세상을 이기는 것은 사람의 숫자(정치)나 현실을 보는 눈(지식)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믿음)에 있음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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