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지역민들은 이젠 최종입지까지 결정되었으니 건설 과정에서 힘껏 박수만 쳐주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정말 그럴까. 우리 한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일이 반드시 그렇게 순탄하게 진행되리란 보장은 없다.
지난 1년여 참여정부의 정국운용 방식을 놓고 볼 때 앞으로도 이슈 선점을 통해서 정국주도권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국가균형발전과제의 추진 과정에서도 ‘정치적 아젠다’를 계속 활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데 지역민들의 고민이 있다. 정치인들이 외치는 신행정수도건설과 전문가집단의 그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는데 이를 설득할 수 있는 역량과 방안을 우리는 갖고 있는지 묻고 싶다.
얼마 전 수도권의 반대 목소리가 하늘을 찌를듯하던 때 수도권 전문가들과의 대화 도중 상황이 이쯤 되면 해당 지역에서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고 뭔가 움직여야 하지 않느냐고 넌지시 의중을 떠보는 것이 아닌가. 대전에서 지역개발 학술회의를 개최하면 여러 참가자들 가운데 특히 영호남지역 학자들은 대전의 입지조건을 부러워하면서 자신들의 고민을 토로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얘기에 우쭐해 하는 것도 잠깐, 자기 지역에 이런 국가의 주요행정, 과학, 국방 관련 시설들이 있다면 당신들처럼 이대로 두지는 않을 거라고 일침을 가한다. 그냥 방치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일갈한다. 그동안 좋은 입지여건 아래 다양한 기회를 누려왔던 점을 실감하지 못하는 사이 지역개발의 자생력을 잃어 가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본다.
70년대부터 대전을 중심으로 입지한 주요 시설을 열거해 보면 대덕연구단지, 3군본부, 엑스포 과학공원, 정부대전청사 등 다른 지역에서는 하나도 유치하기 어려운 국가기능들이 다수 밀집해 있다. 그동안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해당 기관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지역발전의 활력소로 삼아 왔지만 이런 일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어느 지역에서도 할 수 있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들을 감동시키고 지역의 일원임을 스스로 외치게 하는 데는 부족할 따름이다. 이젠 깨어나 지역발전의 자생력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수도권 기득권층은 물론 심지어 70년대 임시행정수도의 입지선정에 직접 참여한 전문가까지 반대 목소리에 가세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그냥 앉아서 받을 수만은 없다. 우리 이웃, 영호남을 비롯한 모든 지역이 골고루 신행정수도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주도적인 준비를 위해 차분히 머리를 맞댈 때다. 벌써부터 호남고속철 분기역의 특정지역 유치가 전제되지 않는 신행정수도 후보지 결정을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우려스럽다.
지역발전의 불균형과 수도권 집중의 폐해를 오랫동안 겪은 지역민들은 수도권의 목소리를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무책임한 말로 무시해 버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가슴만 뜨거워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으니 이쯤해서 우리 자신을 한 번 살펴보자. 주제 파악에 어두운 시민들은 자칫하면 무시당하기 싶다. 우리 모두 ‘잔칫상’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거친 들판’으로 나와 신행정수도를 맞을 준비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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