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잡히면 ‘예수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렇게 말하고 죽어야 한다”는게 그 목사님의 주장이다.
‘사고의 고정’이라는게 이토록 사람을 편협하게 만들고 자기 중심의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누가 위에서 평상시 할아버지 노릇을 해줘야 시련을 통해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할텐데 혼자서 할아버지 노릇을 다하고 산 이에게는 오로지 자기의 생각이 최상의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게 되고, 그 상황이 반복 누적되다 보면 무서우리만치 극단적인 생각을 가지게 된다.
원한에 사무쳐 세상의 모든 생각이 한쪽으로 고정된 살해범들의 상황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애닯다.
눈높이를 맞출 줄 알아야 어려운 비신앙인에게 전도를 할텐데.
신앙인이면 다 순교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이 비신앙인에게 고개를 숙일 줄 알까.
전문직을 가진 이들이 흔히 겪기 쉬운 일이나 특히 종교 사역자들은 모든 이들의 추앙을 받고 생활하는 분들이라 잘못하면 젊었을 때의 초심을 유지하지 못하고 교만해진다거나 자기의 말이 곧 법인 양 오해 속에 살기 쉬운 것 같다.
사고가 고정되는 것은 살며, 나이 먹으며 가장 경계해야 할 생활의 일면이다.
세월이 가면 더 너그러워져야 하고, 덕스러워져야 하고, 겸손해져야 하고, 내 자리 아랫사람에게 내어주고 싶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텐데, 이 사고의 고정이 그 길을 가로막는다.
비단 그러한 일이 생기는 이들도 자기의 의지대로만 그리 되는 게 아니라는 차원에서 더욱 나이 먹으며 진퇴유절(進退有節)의 마음으로 중간점검을 하는 습관을 가져야 될 줄 안다.
이번 고 김선일씨 관련 애사에 대해, 본 사건 못지않은 잘못된 행위를 한 종교 지도자를 바라보는 같은 기독인의 심정은 똑같이 ‘쯧쯧’하는 제스처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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