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사람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삶의 동기를 부여받고, 서로를 격려해 주며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경도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도서 4:9-10) 말씀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임이 분명하다. 모든 사람은 누군가와 ‘관계’라는 틀을 형성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독신으로는 살 수 있으나 홀로(alone)는 살아갈 수 없다. 또한 ‘관계’를 가지고 그 안에서 살고 있으나 ‘관계’를 깨트리거나 ‘관계’를 벗어나서는 살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대중 속에 있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존재로 인하여 대중이 형성되는 양상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인간사의 구조 속에서 한 사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대중주의에 맹목적으로 다가가는 어리석음을 피하고 그것에 조심스러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언제나 모든 시대와 역사 속에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 사람의 영향력과 중요성은 입증되어 왔다. 한국축구를 바꾼 것도 분명 한 사람의 역할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에 ‘한 사람의 중요성’에 시선을 고정할 필요가 있다. 한 시대와 한 역사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한 사람의 역할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지나친 영웅주의에 빠지거나 매료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성경에서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던 사사기 시대(사사기21:25)의 한 인물인 선지자 사무엘을 생각할 수 있다. 사무엘서에서 하나님은 한사람 사무엘을 사용하시길 주저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블레셋 사람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경내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다”(사무엘 상7:13) 이 말씀은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게 해 준다.
대형 마켓의 등장, 대중 사회 속의 대중주의 추구, 모든 분야의 대형화 등 현 시대는 소형이나 소수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하는 듯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러한 사회 현상에 반동이나 하듯이 한 사람의 중요성 역시 쉽게 간과하는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대중(multitude)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한 사람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 지극히 작은 소자(小子) 하나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일, 오병이어를 드린 한 소년, 한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한 로마서 5:12-21 말씀 등은 성경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한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정신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자신이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하나님 나라의 대표로서 하나님과 가정, 가문과 직장 그리고 사회 앞에 살아가고 있는 중요한 대표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은 한 사람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이 땅위의 대표자(고전3:16-17. 고후6:16. 벧전2:9)임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존재와 그의 삶은 상상을 초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룩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의 한 사람! 그는 바로 그리스도인 전체를 대표하는 중요한 존재이다. 하나님은 대중(multitude)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한 사람에게 항상 그분의 시선을 주목하고 계신다. 이것이 한 사람의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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