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청탁에 의해서만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청탁과 무관하게 글을 써야 하니까 방학은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방학이라 해도 방학일 수만은 없다. 어제도 걸려온 전화를 내려놓으며 원고청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수락해버린 나의 우유부단함을 한없이 자책하였다.
프랑스의 시인 말라르메는 ‘백지의 공포’라는 말을 통해서 스스로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고통스러움을 고백하였다. 그가 공포를 느꼈던 ‘백지’는 시인들이 한 칸 한 칸 채워야 하는 원고지를 의미하지만, 또한 그것은 시인들이 살아야 할 삶의 백지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시인에게는 그가 살아갈 시간의 ‘백지’와 시가 씌어질 ‘백지’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가 설정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인들은 삶의 고통과 창조의 고통을 동시에 짐 지고 산다. 그러나 그 고통을 시인들은 기쁨이자 영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시인들은 오히려 불행한 현실에서도 그것을 딛고, 더욱 빛나는 언어의 광채를 보여주어야 한다. 시인들은 혼미한 삶, 불확실한 시대, 전도된 세계에서도 꿈을 꾼다. 시인들은 컴퓨터의 칩(chip) 속에 들어앉을지라도 꿈을 잃지 않는 한, 그들은 끊임없이 시를 쓸 것이다.
시인은 시 한 줄을 갈고 닦기 위해 몇 날 밤을 지새운다. 그는 고통스러운 세계로부터 상상력의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시정신을 펼치기 위해 ‘피를 잉크 삼아’ 쓰고 또 쓴다. 그들은 대량 복제의 규격화된 사회에서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에 촛불을 밝히고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인들이 ‘백지의 공포’와 싸우는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시인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서 세계와의 싸움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절망과 어둠을 넘어서는 용기와 결단을 통해서 이 세계의 절망이나 어둠과 대결하는 지혜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시인들은 한 시대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인식하며 그것들 사이의 조화를 꾀하여 새로운 세계로 도약해 가려는 꿈과 의지를 펼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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