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 않아도 신행정수도 건설을 반대해온 사람들에게는 뜻밖의 호재를 만난 셈인데, 마치 울고 싶던 차에 뺨 맞은 아이를 연상할 정도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반대 논리는 표면적으로 조금씩 다른 내용으로 주장되었으나 근본에 깔린 정서는 한가지, 즉, 수도권으로서 누려왔던 기득권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우려, ‘서울’이라는 특권의식이 훼손당할 가능성에 대한 저항이라 할 것이다. 서울시장과 경기도 지사가 전면에 나서는 것이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서 그간의 과정을 간단히 돌이켜 보자. 처음 2002년 대통령 선거공약으로 신행정수도 건설이 나왔을 때, 일부 정당과 언론에서는 “서울 공동화 현상, 수도권 집값 폭락”등의 자극적인 타이틀로 수도권 주민들의 반대 정서를 자극하며, 이 사안을 지역갈등문제로 변질시킬 의도를 드러냈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여러 요인중 가장 큰 것이 모든 분야에서의 한계상황에 다다른 수도권 과밀현상이고, 따라서 이를 치유할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그 특단의 대책중 핵심이 행정수도 이전이라는 본질적인 면은 언급하지 않은 채 말이다.
어쨌거나 대선, 총선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하겠다는 대통령과 여당이 인정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특별법도 통과되었다. 반대를 하긴 해야겠는데 명분이 없어져서 마땅한 계기를 못잡고 있던 차에 예의 그 천도 발언이 나온 것이다. 자연스럽게 반대 논리의 핵심이 ‘천도라서 안된다’라는 식으로 바뀌었다.
몇 달전에는 그걸 모르고 국회에서 찬성해 주었지만 이제 보니 천도라서 곤란하다는 논리이다. 어느 정치인 개인이라면 또 모를까 나라를 이끌고 나가겠다는 공당이 이렇게 가벼이 입장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속성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너무 궁색하다는 느낌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처음부터 반대이긴 했는데, 이제까지는 정국 상황상 말할 수가 없었고(심지어는 찬성해야 했고), 이제는 말못할 상황이 다 해소되었으니 본심을 밝히겠다는 의도를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모든 분야에서 초고속, 최첨단을 걷고 있는 오늘날에 고려시대, 조선시대 상황에서나 통용되었던 천도 개념을 그대로 적용하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천도라는 과거 개념을 매개로 한 수도이전 논란은 국가 대사의 본질을 흐리는 것이다. 물론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지역대결 양상으로 흐르게 한 데에는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대통령의 가벼운 말과 인식도 한몫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걸 빌미삼아 본질적 의미를 왜곡시키고 수도권 주민들의 시각만을 강조하는 일부 야당과 언론은 이젠 좀더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야 할 것이다. 즉, 나라 전체적인 차원에서 지역적으로 어떻게 역할과 기능을 조화롭게 분담해야 국가나 개인의 삶이 가장 풍요로워지겠는가라는 관점을 버려서는 안된다.
이제 천도 논란은 그만 두어야 한다. 대신 어떤 규모로 어떤 기능을 갖춘 행정수도가 건설되어야 하는지, 어느 시기에 어떤 순서, 어떤 방법으로 해당 기관들이 이전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할 때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논의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통일된 한국에서 서울, 평양, 그리고 이제 건설될 신행정수도가 각기 어떻게 역할 분담을 해야 하는지라는 큰 틀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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