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칼럼] 제비 한 마리와 희망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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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아탑칼럼] 제비 한 마리와 희망의 정치

  • 승인 2004-06-23 09:52
  • 고광률 대전대 신문상임국장·소설가고광률 대전대 신문상임국장·소설가
봄은 제비 한 마리로 오지 않는다. 아지랑이도 피고 개구리도 나오고 또 다른 제비들이 날아와야 진정 봄이다. 그러나 성급한 우리 사회는 한 마리의 제비를 놓고 봄이다 아니다를 주장하며 다투고 있다.

민주-반민주의 구도 주장이나, 진보-보수의 구도 주장 등이 그렇다. 실체가 없는 가운데 개념만 존재하는 꼴이다.

말하자면 선거를 위해 미디어용으로 급조한 일종의 ‘슬로건’이 마치 실상인 양 오인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정치판이 언제 민주-반민주 또는 진보-보수의 양대 시스템으로 운영되어 왔다는 말인가.

분명 우리의 정치는 힘과 세력의 논리와 사적 권력과 부귀의 수단으로 좌우되어 왔다. 이런 정치판을 놓고 지금은 진보-보수라는 양분론을 규명하려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있어 진정 진보는 무엇이고, 보수는 무엇인가 라는 심각한 고민과 토의가 있었는가. 답은 없었다. 다시 말해 한국 사회의 진보와 보수는 개념 정립조차 전무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실체도 없는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 구도를 짜고 있는 것이다. 탄핵을 반대하면 진보이고, 이를 찬성하면 보수이며, 이라크 파병을 반대하면 진보이고, 이를 찬성하면 보수인가.

이 정도를 가지고 진보와 보수를 이야기한다면 곤란하지 않은가. 국민들은 총선을 치르면서 자신들(각 당)의 입맛에 맞게 꾸민 미디어와 급조된 이미지에 상당한 혼란을 겪었다.

그리고 이런 혼란이 선거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이런 상황에서 출발한 17대 국회가 진보-보수의 양립 관계를 국민의 동의하에 무리 없이 성립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미지의 조작은 선거 기간 동안만으로도 충분하다.

현실과 바람은 다른 것이다. 향후 우리의 정치가 진보-보수의 양대 구도로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보겠지만, 그렇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우리 정치에는 자생력과 정체성을 확보한 진보도 보수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바꾸자고 주장하면 진보고, 안 된다고 주장하면 보수인가? 또는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면 진보이고, 보수라고 생각하면 보수인가? 왜 한 마리의 제비를 놓고 봄을 이야기하는가.

이제 새로운 희망의 정치를 논의해야 할 때가 이르렀다. ‘風’으로 치른 17대 선거였다. 이 ‘風’은 곧 미디어에 의존한 이미지 정치를 뜻한다. 이미지는 포장이다.

국민은 포장을 보고 선택했으나, 이제 곧 그 포장을 뜯어 볼 것이다. 그 때 그 속에 들어있는 내용이 무엇임을 볼 것이다. 국민은 내용 속에서 더 이상 ‘風’을 찾거나 이미지를 찾지 않을 것이다.

우리 정치의 선택은 진보-보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이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뭐가 진보이고, 뭐가 보수인지 알지 못한다.

진보=빨갱이이고, 보수=수구꼴통이라는 등식이 총선 전까지만 해도 세간에 떠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보수의 양대 구도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곧 친북-친미 구도로 둔갑을 하고 말 것이다.

이런 국민 대다수의 흑백론적 인식에 대한 심각한 고려 없이 서둘러 진보-보수의 대립 구도를 만든다면, 이것은 또 다른 불안과 혼란을 야기 시킬 것이다. 때문에 정치인은, 그리고 언론은 명확한 개념과 실체가 있는 17대 국회의 첫 단추를 꿰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의 병폐는 행동이나 실체보다 말이 앞서 나간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들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진보-보수의 정치구도가 성공하길 바란다면 먼저 실체 없는 그림자부터 지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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