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할 작품은 대도시 산동네에서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열쇠장이 노인, 초보 도박사 청년, 삼류 나이트 클럽 가수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으로 서로가 서로의 상처받은 영혼을 쓰다듬어주는 따뜻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프로그램의 취지에 따라 공연 장소를 어디로 할까 생각하다가 작품의 성격과 메시지를 감안하여 사회교정 시설이나 공연장 접근이 용이치 않은 지역이나 고급공연장을 찾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의 거주지를 택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래서 공연장소로 정한 곳이 원촌 정보산업고등학교(대전 소년원)과 2002년 새로 문을 연 어떤 구(區) 도서관이었다.
두 공연장의 관객은 각각 다른 성격을 갖고 있었다. 원촌 고등학교의 경우 사소한 행동 때문에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교육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이었다.
그들의 천진한 얼굴을 보며 저도 모르게 지녔던 편견을 의식하고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공연 중 긴장이 풀리지 않은 그들의 어깨와 목을 뒤에서 보며 안쓰러움을 느꼈다. 공연 후 이들이 연기자들을 찾아와 은밀히 “나, 눈물나서 혼났어요.” 하는 말에 고마움을 느꼈다.
구 도서관 관객의 경우 젊은 엄마들이 직장 일로 바쁠 남편과 고사리 손 아이들을 대동하고 공연장을 찾아주었다. 이들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보다도 시간적인 이유 때문에 공연에 접할 기회가 적었을 것이다. 공연 후 진정으로 감사를 표시하는 이들의 표정에서 부끄러운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공연의 환경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소년원의 경우 시설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 일을 담당하고 있는 특활담당 공무원의 헌신적인 노력이 공연자들로 하여금 그 조건을 능히 넘어서게 했고, 구(區) 도서관 두 여성 사서는 본래 임무를 마친 후 공연 홍보물을 직접 제작하여 인근 아파트 단지나 시장에 직접 나가서 주민들을 이 공연에 끌어들이려는 헌신적인 노력을 해주어 공연 전에 공연자들을 먼저 감동 시켜버렸다.
젊은 공직자들의 이런 모습에서 우리의 삶을 ‘웰빙’의 수준으로 이끌려는 우리 사회의 노력을 읽을 수 있어 눈과 가슴이 따뜻해졌다. 공연 생산자가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삶이 바뀌고 있다. 세상은 보는 사람의 노력의 높이만큼 멀리 넓게 보인다. 문화를 생산하는 자나 이를 매개하는 자나, 이를 수용하는 자 모두가 조금씩만 더 노력하면 우리의 삶이 훨씬 윤택해 질 것이다. ‘웰빙’은 이제 TV 광고에만 나오는 구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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