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들은 일제히 ‘돌파’라는 다소 전투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이룩한 외형적 성과에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두 번씩이나 남한 성인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숫자의 사람들이 똑같은 영화를 본 셈이니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우리 사회에 끼친 문화적 파장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이들 두 영화의 화려한 성공과 함께 우리 문화계의 전반적 상황을 떠올려 보면 왠지 씁쓸하다는 느낌이 든다. 영화를 제외한 문화종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자본의 변방에서 움츠러들고 있기 때문이다.
두 영화의 큰 성공은 앞으로 전개될 우리 문화계의 빈익빈부익부 현상, 혹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문화적 편향성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아서 염려스럽기까지 하다. 영화는 이제 블랙홀과도 같은 흡인력으로 우리 문화의 자본과 인기를 모두 독점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누구나 알다시피 건강한 생태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생물종들의 다양성이 필수 조건이다.
또한 건강한 몸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음식물들을 다양하게 섭취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한 사회 공동체의 문화가 지속적으로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문화종들의 균형과 조화가 매우 중요하다. 어느 한 종류의 생물종이 지나치게 번성하는 생태계나 특정한 음식만을 편식하는 사람은 건강할 수 없다.
그러니 영화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라도 영화 이외의 문화종들이 함께 활성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문화 현실을 보건대 일반인들의 관심과 자본력이 영화 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다.
한 예로 문학을 살펴보자. 문학은 아마도 지금 우리 사회의 문화종들 가운데 경제적으로 가장 빈궁을 면치 못하는 분야에 속한다. 7,80년대만 해도 순수 문학 작품들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자주 오르내렸고, 간혹 특정한 시집이나 소설집이 수십만 부씩 팔려나가기도 했다.
물론 그 시절과 현재의 문화적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둘을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분명한 것은 날이 갈수록 문학적 사유와 서정의 진솔함이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사정이 심각하다.
서울의 메이저급 출판사에서 발행하는 문예지나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시인, 소설가의 작품집도 3000부를 판매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문예지나 작품집을 만드는 데 소용되는 비용(인쇄비, 원고료 등)과 유통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비조차 건사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순수 문예 잡지나 문학 작품집들은 이미 시장경제 원리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이 열악하니 엉뚱한(?) 꿈을 하나 꾸어본다. 순수 문학 작품의 독자 1000만 시대가 도래하기를! 영화의 관객 1000만 시대를 이미 열었으니, 이제 문학 독자 1000만의 시대가 한번쯤 도래해 주었으면 한다.
우리 문화가 한층 건강하고 풍요로워지기 위한 의미 있는 사건(시뮬라르크)이 발생하기를 염원해 보는 것이다. 지역에 따라 조금의 차이는 있겠지만, 공교롭게도 영화 티켓 한 장과 시집 한 권의 가격이 거의 비슷하다.
이번 여름에는 영화를 보듯이 시집도 한 권쯤 읽어보는 것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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