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키가 큰지 네 키가 큰지 재어봐야 하고, 누구 팔 힘이 더 센지 팔씨름을 해봐야 직성이 풀린다. 이렇게 재보는 습성은 나이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나는 몇 평에 사는데 당신이 사는 아파트는 몇 평형이냐, 내 자식은 공부를 이만큼 하는데 당신 자식은 몇 등인가 견주어봐야 내가 어느 정도 성공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아마 비교하는 습성은 탐욕, 증오, 기만 등과 같이 인간의 기본 속성인 듯싶다.
그런데 문제는 비교하는 삶은 고통을 수반한다는 사실이다. 과도한 비교는 불필요한 경쟁을 유발하게 되고, 능력 이상의 무리를 하게 하여 몸과 마음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성현들은 남과 비교하지 말라는 말씀을 꼭 하시는 모양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남과의 비교를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심지어 현재를 과거 또는 미래와 비교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바람직한 삶도 가능하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이 이러한 지혜를 갖기는 쉽지 않다. 모든 일을 상대적으로 해석하다 보면 심신만 피곤해지는 것이 아니라 쉽게 남의 탓을 하는 나쁜 버릇도 갖게 된다.
특히 내가 없는 것들을 남이 갖고 있으면 시기와 질투의 마음이 싹튼다. 아름다운 외모, 뛰어난 재능, 행운과 출세 등등 내가 그렇게 노력해도 갖지 못하는 것들을 남들은 쉽게 누리는 것 같아 세상이 불공평하게 느껴진다. 부모와 사회를 원망해 보기도 하고 때로는 신에게 화풀이도 한다.
남과 비교하는 마음이 들 때, 부럽고 시기하는 마음이 들 때 교훈을 삼는 업(業)에 관한 불경말씀이 있다. 欲知前生事(욕지전생사) 今生受者是(금생수자시) 欲知來生事(욕지래생사) 今生作者是(금생작자시). 첫 두 구절은 그 사람이 지금 생에서 받은 것 혹은 누리고 있는 것들을 보면 그 사람의 전생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은 그 다음 두 구절이다. 그 사람의 미래가 어떠할지를 알고 싶어 하면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깨달은 사람에게는 지금이 중요한 것이지 과거와 미래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에게는 과거로 인해 받은 수(受)보다는 미래를 위해 지금 하고 있는 작(作)이 훨씬 더 중요할 것이다.
내남이 받은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제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혜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또 진정한 나눔의 삶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