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꽃이름을 가물가물해하면서도 도대체 이 향기가 어디서 온 것일까, 무엇이 이런 꽃향기를 낳게 하는가, 한참을 헤아리면서 그 향기에 도취되었었다.
사람에게도 그 사람 나름의 향기가 있을 법하다. 체취가 아닌 인품의 향기 같은 것. 그럼 나는 어떤 향기를 지녔을까. 내 자신은 그걸 맡을 수 없다. 꽃이 제 향기를 맡을 수 없듯이. 나를 가까이하는 내 이웃들이 내 향기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에 향기가 없으란 법도 없다. 총선이 끝난 뒤 여야 대표가 만나 상생의 정치를 다짐할 때 그런 기대를 해보았다. 상생이라는 게 뭔가. 여야가 서로 헐뜯고 싸움질만 할게 아니라 도우면서 함께 살아나는 정치를 하자는 손짓 아닌가. 하지만 아무리 상생의 의미를 선의로 해석한다 하더라도, 지금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진정한 상생 정치가 실현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귀는 상생의 다짐을 벌써 잊은 듯하다. 정치권 모두 매한가지다. 어디라 가릴 것 없이 국민과 민생을 위해 상생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 ‘말로써 말 많은’ 맹세는 이름 모를 꽃 한송이가 주는 감동의 한 자락도 따르지 못한다.
대통령은 경제위기론을 보수언론이 개혁 방해를 위해 부추기는 것쯤으로,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을 뭐든지 바꾸는 것을 싫어하는 세력쯤으로 이해하는 듯이 말하고 있다. 포용과 상생의 정치를 추구하는 대통령이라면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열린우리당도 그렇다.
장관자리를 두고 당내의 차기 대선 주자들끼리 다투고만 있는 모습은 상생 정치와 거리가 한참 멀다. 한나라당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무총리 임명 문제만 놓고 보자. 국무총리 임명권은 대통령의 권한이다. 품성과 능력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대통령의 선택을 존중해 줄 줄 알아야 한다.
그런 기본적인 것은 다 제쳐놓고 당적을 변경한 배신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거세게 거부한다. 이런 태도는 분명 그들이 먼저 내세운 상생의 정치와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정말 배신자라면 용서함으로써 상생의 첫걸음을 뗄 수 있는 것 아닌가.
오직 나와 네가, 내 편과 네 편이 있을 뿐이다. 상생이 끼어들 틈은 없다. 상생이란 말이 나오는 것은 사이좋을 때가 아니다. 사이가 나쁘고 긴장관계일 때 상생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법이다.
문제는 서로 다름을 강조한 나머지 상대를 타도해야 할 적으로 몰아붙이는 데 있다. 상대로 하여금 위기감을 갖게 해서는 상생의 공감은 일어날 수 없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믿는 것, 독점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상생 정치의 룰이다.
지금 정치가 어떤 냄새를 풍기고 있는지, 정치인 스스로 냄새를 맡을 수 없다면 국민에게 물으면 된다. 6·5 재·보궐 선거 결과를 놓고 야당은 득의양양하고 참패한 여당은 풀죽은 모습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잊고 있진 않은가. 선거 사상 최저의 투표율이라는 28.5%는 국민이 정치에 매긴 점수다. 국민 10명 중 7명이 피해갈 정도라면 그 냄새가 어떨지는 묻지 않아도 안다.
국민의 코는 이처럼 민감하다. 어찌 두렵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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