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경건한 마음으로 참배를 마치고, 뒤돌아서는 발걸음을 잠깐 멈추어 국립묘지 현충탑을 돌아나가는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다.
6ㆍ25전쟁 당시 전사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호국용사들과 시신은 찾았으나 그 이름을 알 수 없는 무명용사들이 현충탑 내부에 모셔져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일까, 바람소리가 마치 먼저 가신 분들의 흐느낌으로 내 귓가에 스쳐 지나간다.
내일로 마흔 아홉 번째를 맞이하게 되는 현충일은 조국을 위해 하나 뿐인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그분들의 고귀한 뜻을 오늘에 되살려 나라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고자 제정한 날이다.
그래서 인지 현충일이 있는 호국보훈의 달 6월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 대한 추모 분위기가 전국적으로 높아 가는 것은 사실이다.
이곳 국립묘지의 6월도 길게 늘어선 참배행렬, 고사리 같은 손으로 헌화하는 유치원생들과 묘역정화활동으로 땀을 흘리는 직장인 자원봉사단체들로 분주한 가운데 성스러운 향 내음이 경내를 가득 채우고 가슴을 시리게 하는 군악대의 진혼 나팔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의 생활이 조금씩 풍요로워 지면서부터 현충일은 유원지나 놀이공원으로 나들이를 떠나는 즐거운 휴일로 변해 가고 있다.
그저 도심 속의 아파트 앞을 지나칠 때 드문드문 내걸린 태극기를 볼 수 있다면 그나마 고마운 일일 것이다. 아무리 개인의 생활이 중요할 지라도 이날 현충일만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희생에 감사드리고 아직도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유가족들에 대한 위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현충일을 맞이하며, 필자는 ‘순국선열들이 그렇게 바라던 조국광복은 아직 오지 않았고,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도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해본다. 우리의 선배들이 그렇게 애원하던 조국광복은 남북한이 둘로 나누어져 있는 이런 조국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고, 지금 이 시간에도 이름모를 골짜기에 그때의 아픔을 간직한 채 소리 없이 묻혀 계신 우리 호국영령들의 유해 발굴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때의 아픔이 가시지 않아서 인지, 매년 현충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유가족과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 곳 국립묘지로 이어진다.
먼저 가신 영령들의 뜻을 기리고자 찾아오시는 분들이 좀더 편안하고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참배를 드릴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유가족 수송대책, 주자창 마련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교통 혼잡으로 유가족과 참배객들이 겪을 고통을 생각하니 내심 걱정이 앞서고, 죄송한 마음 감출길이 없다.
끝으로 이날 국립묘지에 참배하고자 하는 유가족과 참배객들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리자면, 현충일 당일은 극심한 교통 혼잡으로 평상시 보다 참배하는데 많은 불편이 따를 것이다.
따라서 새벽잠을 설쳐가며 몇 시간을 달려와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잠깐 참배를 드리는 것 보다, 이번 현충일에는 가까운 보훈시설 등을 방문하여 보훈가족들의 아픔도 함께하면서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으로 대신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참배할 수 있는 날을 택하여 국립묘지를 찾아 줄 것을 부탁드리고 싶다.
현충일 뿐 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뜻을 받들고 그분들의 정신을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이번 현충일이 우리 모두에게 나라와 민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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