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안보가 “걱정이다”라는 사람도 있고 “괜찮다”는 사람도 있다. 안보장관회의서 나온 이야기를 들어보면 잘 모르는 서민들이나 괜히 우려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 국군을 그렇게 못 믿느냐?”는 말도 있었고 이라크에 파병되는 미군이 “주한 미군의 37분의 4에 불과하다”, “한반도에 전쟁 제한장치가 돼 있다”는 말도 있었다고 한다.
“한반도 전쟁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중국이어서 북한이 구조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는 게 어느 관계자의 이유였다고 한다. 국방부도 “안보에 영향 없다”고 하고 대통령도 “협력적 자주국방을 할 테니 안심하라”는 말씀이다. 그런데도 소심한 사람들이 있다. “그 실체가 뭐냐? 말만 가지고 될 일이 아니지 않느냐? 마스터 플랜이라도 갖고 있으면 그 일부라도 보여달라. 그래야 안심할 게 아니냐?”고 한다. ‘협력적 자주국방’이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돈의 힘으로 하는 것이고 그 힘은 국민의 세금 몇 배, 몇 십 배를 더 늘려야 생긴다는 주장이다. 그것도 앞으로 수년간 돌발사항이 없다는 조건에서다.
세상사는 이렇듯 굽이치는데 자연의 이치는 어김이 없다. 지난 21일은 절기로 소만(小滿)이었다. 소만은 양력으로 5월21~22일부터 6월 5~6일까지, 보름 기간이다. 소만이란 만물이 점차로 생장하여 가득 찬다는 뜻이다. 이제 모내기가 시작되고, 씀바귀가 뻗어 오르고, 보리가 익는다. 이 어김없는 자연의 순리가 놀랍다. 그러나 세속에 묻혀 있다 보면 이런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만다.
어쩌다 들판을 나가도 보리 익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보리밭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부턴지 뻐꾸기 소리도 뜸해지고 말았다. 더 깊은 숲으로 피해 숨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참으로 보고 듣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우리의 심성이 변한 탓이다. 설령 지천으로 뻐꾸기가 울고 지천으로 보리가 물결친다 하더라도 이 둘의 모습을 눈과 귀로 담아낼 능력이 우리에겐 없다. ‘보리 따로, 뻐꾸기 따로’라면 몰라도 함께는 못한다. 서로를 나누고 대결시키는데 우리가 그동안 도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1년이 특히 그랬다.
‘진보와 보수’, ‘개혁과 수구’. ‘세대와 세대’를 나누는 갈등의 골이 이렇게 깊은 적이 예전에는 없었다. 이런 이분법적인 말다툼이 왜 이렇게 오래 판을 치는가? 100% 통째로 진보인 사람, 개혁인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통째로 100% 보수인 사람, 수구인 사람은 또 누구란 말인가? 먼 나라를 나가 보면 우리나라는 정말로 좁고 좁다. 이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서로를 나누고 으르렁거리는 꼴은 눈물 솟는 일이다.
국가를 말할 때, 민족을 말할 때, 진리나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언제나 하나일 수밖에 없다. 윗사람들일수록 아랫사람들을 분열시키지 말아야 한다. 또한 나라의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하고 아랫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이번 미군감축 문제도 정부가 미리 알면서도 뒤늦게 알렸다는 소문도 있다.
우리 사회가 예기치 않은 일에 휘말리지 않도록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보다 진지해야 한다. 세상 물결은 자연과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사람이 만드는 물결도 자연이 만드는 물결을 닮아야 한다. 보리가 익고 뻐꾸기가 울 수 있는 것은 자연이 모두를 품에 안기 때문이다. 농부가 모내기를 하고 씀바귀가 땅 끝을 밀어 올리는 것도 소만이 절기를 미리 알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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