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에서 내가 가장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외쳤다는 탄생게(誕生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말을 한다거나 걸음을 걷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임에도 불구하고 수천년 동안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되풀이하여 이야기되는 것은 이 게송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온전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당시의 인도사회는 사제계급인 브라만을 정점으로 하는 철저한 계급사회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정해지며 이는 평생 벗어던질 수 없는 질곡이었다. 결코 모든 생명이 평등하게 존엄성을 인정받지 못하였다.
부처님은 이러한 차별적이고 억압적인 제도와 문화를 부정한 것이다. 부처님은 신이 존귀한 것도 아니요, 브라만 계급만이 존중받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인 자신이 가장 존귀하다고 하였다. 이는 고유명사로의 석가모니 당신만이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다.
개인 존재의 절대적 위엄성, 인간의 주체성, 생명의 평등성, 존엄성을 천명한 것이다. 부처님은 신분·인종·재산의 여부 등 외부적 조건에 관계없이 각자가 존엄한 존재로서 자신의 운명, 삶의 주인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주신 것이다. 우리는 누구의 종속물이 아니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영위할 수 있는 존재이며, 신령스러운 존엄한 생명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메시지다.
계명된 세계에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진리는 이제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외신에 의하면 이라크에서는 미군과 영국군에 의해 무고한 시민이 학살을 당하는 하면, 포로들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문과 학대를 받고 있다고 한다. 남의 일이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사회만 해도 동남아를 비롯한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사람들의 차별과 멸시, 모진 학대 속에 고통 받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느 누구도 타인을 차별하거나 억압할 권리가 없다. 자신이 존엄하다면 남 또한 똑같이 소중하다. 부처님은 말씀하신다.
“모든 생명은 폭력을 두려워하고 죽음을 두려워한다. 이 이치를 자기 몸에 견주어 남을 죽이거나 죽게 하지 말라. 모든 생명은 안락을 바란다. 폭력으로 이들을 해치는 자는 자신의 안락을 구할지라도 안락을 끝내 얻지 못한다.”(법구경)
“어떠한 생명이든지 자기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는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생명도 저마다 자기를 가장 사랑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상응부 경전)
자신으로 인하여 타인이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된다. 다른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행복은 없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자신의 삶이 어떠한지 각자의 발밑을 살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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