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한 지방을 살리자는데 그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행정적 재정적 권한을 지방에 부여하고 중앙에 집중된 자원을 지방에 배분한다면서 그 수혜자가 지방자치단체에 그치는 관관분권(官官分權)이 된다면 그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현재의 지방자치단체가 곧 주민들의 자치단체가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연히 지방자치단체장은 주민 선거를 통해 선출된 주민대표이므로 그에게 권한을 주면 주민들에게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유권자의 대표가 유권자의 이익을 대표하지 않는 것은 현대 정치 상식의 하나가 된지 오래다. 주민들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의 권한이 커지고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확충된다고 하여, 지방이 활성화되고 주민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지난 10여년의 지방자치경험이 이를 입증해주고 있다.
부정부패로 사법처리된 자치단체장의 숫자가 얼마나 많았던가. 다가올 6월 5일에 제주와 부산, 경남, 광주의 광역단체장 보궐선거가 동시에 치러진다는 것도 그 반증이다.
지방자치단체장에게만 권한을 내려 보내는 관관분권이 오히려 지역사회의 기득권 집단의 이익만을 강화시킬 뿐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대다수 지역민을 소외시킨다면 지방분권은 민주화에 역행하고 주민 삶의 질을 높이는데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지방분권을 요구 할수록 지방자치단체를 감시, 견제할 수 있도록 주민들에 의한 감시, 견제시스템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과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주민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하는 주민참여는 지방분권 시대의 절실한 과제다.
이런 점에서 이제 곧 해산될 16대 국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운명에 빠진 ‘납세자소송법에 관한 특별법(안)’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납세자소송법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예산낭비, 정책실패 등이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통제 수단으로 일반 국민이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의 위법한 재무회계행위에 대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주민소송법이라고도 불린다.
납세자소송제(주민소송제)에 의하면 단 한명의 주민이라도 행정의 위법행위를 방지ㆍ시정하고 주민전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지방자치단체장 또는 그 소속 공무원의 위법한 재무회계행위의 예방ㆍ금지 또는 원상태의 회복을 청구할 수 있다. 자치단체의 일탈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통제수단인 이 제도는 미국와 일본 등지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으며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16대 국회는 이법의 제정을 통한 지방민 스스로에 의한 지방자치의 개혁을 외면했지만 17대 국회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연수를 빙자하여 낭비성 외유를 일삼는 공무원이 있다면 소송을 제기해 그 돈을 토해내게 만든다는 상상만 해도 우리 국민들은 즐겁다. 17대 국회는 개원 즉시 납세자소송법(주민소송법)을 제정함으로써 국민에게 즐거움을 선사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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