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여야 모두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의사를 밝힘으로써, 이제 지난 두 달 여 동안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던 탄핵광풍이 마무리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헌법재판소 기각결정의 여파는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일단 사과할 사람이 여럿 생기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기각결정을 내리면서도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 등 발언은 공무원의 중립의무 위반이며, 국민투표로 재신임을 묻겠다고 한 것도 헌법수호의무 위반이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나아가 대통령은 정치력 부족으로 탄핵소추를 야기하여 산적한 국정현안의 처리를 표류하게 만든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조심스럽게 지켜볼 일이다.
또한 탄핵소추를 주도한 민주당과 한나라당, 자민련 역시 탄핵정국을 가져온 데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탄핵소추의 적법성 자체는 인정되었지만 결과적으로 탄핵에 이를 정도의 중대한 헌법 및 법률 위반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이고 보면, 탄핵소추 자체의 부당성을 부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야당에서는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사과는커녕 헌재 결정이 유감이라고 밝히는 등 탄핵소추가 옳았다는 입장을 고집하고 있다. 유일하게 탄핵소추가 잘못되었다는 의견을 밝힌 것은 최근 정계은퇴를 선언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총재뿐이었다.
당초 중앙선관위의 결정에 대하여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을 헌법파괴적 행위라고 하면서 탄핵소추 사유에 포함시켰던 야당이 헌재 결정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한 것은 참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자기 살을 도려내는 아픔 없이는 거듭날 수 없다는 것을 야3당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편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은 9명의 재판관들이 고심 끝에 내린 것이지만 별개의견을 공개하지 않는 아쉬움을 남긴 것도 사실이다.
사상 초유의 탄핵심판사건이었던 만큼 재판관들 내부에서 다양한 의견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고 그 내용들은 역사적 가치를 가진 문건으로 남을 수도 있었을 텐데,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법에 대한 협소한 해석을 바탕으로 그 의견을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지나친 눈치보기를 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주문을 선고한 후 헌법재판소장이 굳이 “탄핵결정에 필요한 재판관 수의 찬성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기각결정을 선고한다는 사족을 붙인 것은 비공개의 취지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는 별개의견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그 존재 자체는 인정한 것일 뿐만 아니라 정족수 미달을 언급함으로써 탄핵의견이 상당히 많았다는 뉘앙스까지 풍기고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별개의견을 당당하게 공개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제 탄핵정국은 마무리되었다. 모두가 상생의 정치를 외치고 민생과 경제 살리기에 전력해야 한다는 말들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상생의 정치는 잘못된 탄핵에 대한 관련자들의 사과와 책임 인정 이후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두 눈을 부릅뜨고 이들의 행보를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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