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규 경제부장 |
웰빙은 말 그대로 ‘좋게 하는 것’ 즉, 몸과 마음이 하나로 유기적인 건강을 추구하면서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우리에게 소개돼왔다. 자연히 이러한 웰빙은 웰빙족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내면서 우리들의 일상생활속으로 파고들면서 가전제품에서 거주공간인 아파트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앞서도 밝혔듯이 웰빙의 가장 근본은 정신과 육체가 한데 어우러진 건강에서 태동한만큼 흔히들 웰빙라이프를 추구하는 이들은 단연 먹거리에서도 건강을 우선시 한다. 따라서 웰빙족들은 화학 조미료나 탄산음료보다는 유기농 자연조미료를 선호하고, 인스턴트나 패스트푸드(fastfood)보다는 슬로푸드(slowfood)를 즐긴다.
웰빙족들은 패션문화에서도 사뭇 다르게 접근하는 특성을 지닌다. 화려하고 외면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내면적 아름다움(Inner Beauty)을 더더욱 가치있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삶의 방식은 이뿐만 아니다. 각박하기만한 도심지에서의 바쁜 일상과 날로 심각해지는 공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웰빙족은 자연요법과 생태친화적 삶의 방식을 통해 진정한 심신의 건강과 행복을 추구한다. 무릇 이러한 웰빙은 찌든 사회구조에서 어찌보면 일탈을 위한 당연한 도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시간의 여유가 더 생길수록 웰빙문화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 결과 요즘 각종 매스컴에서는 이른바 ‘아침형 인간’이란 또 다른 신조어를 만들면서 웰빙문화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당연시되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이루고 지킬 수 있는 웰빙이 되레 사회적인 위화감을 조성한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웰빙을 추구하는 이들의 삶의 양식이 너무 지나치게 개인주의로 치우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마디로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으면 다행이련만 현실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건강을 지키며 행복한 삶을 위한 웰빙이 웰빙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일부 물질에 기반을 둔 신귀족주의로 치부되면서, 가진 자들의 사치로 인식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곁에는 아직도 절망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절대 빈곤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고통의 나날을 연명해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어디 그뿐인가. 매일같이 각종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사회의 어두운 뉴스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물질적으로 풍족하다고 지극히 개인적으로 스스로의 건강을 위한답시고 웰빙이 아닌 웰빙을 빙자한 물질만능을 뽐내고 있다. 물론 건강에 좋다고 좋은 음식 먹고,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즐기며 생활하겠다는데 감놔라 배놔라 할 성질의 것은 못되지만, 저혼자 잘 살겠다는 웰빙은 왠지 께름칙하다는 느낌이다.
학창시절 인간은 혼자일 수 없어 사회속에서 어울리며 살아가야할 사회적 동물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단언하고 싶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모두는 똑같은 사회구성원으로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지 않는 삶은 웰빙이 추구하는 질높은 삶이 아님을 밝혀두고 싶다.
웰빙은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고 나보다는 우리가 행복한 참다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지, 외형만 좇는 성공주의적 삶은 절대 웰빙이 될 수 없음을 일러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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