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세이]노 대통령과 낙상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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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에세이]노 대통령과 낙상매

  • 승인 2004-05-12 00:00
  • 안순택 논설위원안순택 논설위원
▲  안순택 논설위원
▲ 안순택 논설위원
조선조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가 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낙상매(落傷鷹) 이야기가 나온다. 사납기로는 하늘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매의 어미는 사나워야 하기에 새끼들을 모질게 키운다.

먹이를 먹일 때면 하늘 높이 올라가 둥지로 떨어뜨린다.

높은 데서 떨어뜨리기에 그 먹이가 새끼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둥지에 떨어질 확률은 적다. 먹이를 먹기 위해 새끼들은 철부지 적부터 위험을 무릅쓴 모험을 경쟁적으로 벌이게 된다.

개중에는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지는 놈이 생기기도 한다. 어미 매가 노리는 것이 바로 둥지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는 낙상매다.

다리를 다친 놈은 불리한 여건을 이겨내기 위해 더 악착스러워지고 더 사나운 매가 되지 않을 수 없음을 어미 매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기르는 정이란 짐승이나 사람이 다를 것이 없다. 어미 매는 그 정을 누르고 다리를 다치게 하여 모진 세상을 이겨내며 살아갈 자질을 길러주었던 것이다.

사냥매를 기르던 응방(鷹房)에서도 낙상매를 잡으면 임금이 사냥에서 쓰는 진상품으로 귀하게 여겼고, 여염에서 매를 팔고 살 때도 여느 매 값보다 몇 배나 더 쳐주었던게 낙상매였다.

어미 매가 새끼를 실패로 유도하듯 어미 사자가 새끼 사자를 천길 벼랑에 떨어뜨려 살아날 길을 터득시키듯, 곤궁이나 실망이나 불안 속에 빠뜨림으로써 그 역경에서 자신과 대결하고 자신의 허약함을 발견하여 분발하는 계기를 부여하는 것이 낙상매의 교훈이다.

사람살이에서 실패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실패를 똑바로 보고 ‘올바로’ 배우는 이는 많지 않다. 일본에서 뜨고 있는 이른바 실패학은 ‘인생의 80%가 실패다.

이를 어떻게 정보로 활용하는 가에 따라 나머지 20%의 성공여부가 결정된다’고 가르친다. 우리 사회를 보자. 각종 불법과 혼란 그리고 매사의 적당주의는 사실상 국가능력의 약화가 원인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 약화됐는가.

실패에 대한 규명없이 새로운 정책과 입법으로만 해결하려는 습관 때문이다. 새로운 정책은 혼란을 가중시키고 입법 만능주의는 되레 법경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정을 이끄는 책임자라면 ‘과거로부터’ ‘실패로부터’ ‘외국으로부터’ 그리고 ‘국민으로부터’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헌법재판소에 온 나라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스스로 법적 연금 상태로 규정한 노무현 대통령의 운명이 14일 결정된다. 그가 복귀한다면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호된 시련을 겪었으니 낙상매처럼 예전과 다른 변화된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기대를 한다.

직무가 정지된 지 오늘로 62일째. 노 대통령은 헌재결정이 날 때까지 국정운영과 관련된 학습을 하겠다고 했다. 스스로 학습능력이 뛰어나다고 하는 그이기에 뭔가는 느끼고 배웠을 것이다.

한 가닥 짚어볼 수 있는 게 노 대통령이 최근 언급한 드골과 링컨의 이야기다. 그는 비타협적이란 평을 듣는 드골의 강한 리더십에 대해서 “인상적이지만 따라해서는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링컨에 대해서는 “다시 읽어 봐도 새롭다”고 했다. 자신이 쓴 책에서 ‘건전한 상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겸손한 지도자’로 링컨을 묘사한 그다.

만약 복귀한다면, 더도 말고 링컨에 대한 자신의 묘사를 행동으로 배우려 노력하는 지도자가 되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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