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시리 으실으실한 궂은 날씨에다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져 모처럼 만에 선생님을 모시는 날인데 혹시 객석이 텅비어서 더욱 썰렁한 것은 아닐까 싶어 내심 조심스러웠는데 다행히도 공연장 안에는 생각 외로 많은 관객 분들로 가득차 있었다.
관객의 대부분이 6, 70대 할아버지 할머니셨고 마침 어제가 어버이 날이라서 그런지 부모님을 모시고 온 아들내외 또는 딸 내외들이 제법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나는 연극쟁이(?)라서 그런지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으레이 사람들의 표정을 먼저 살피는 습관이 있는데 참 재미있는 광경들을 볼 수가 있었다.
한결같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표정이 그 옛날 2, 30대 젊은 시절로 돌아가 천막극장에서 신파극을 기다리는 설레임으로 행복해 하던 그런 모습들이셨다.
어제 손주녀석들이 달아드렸을 것 같은 시든 생화 카네이션을 거꾸로 가슴에 매다신 채 나는 늘그막에 이렇게 자식 덕분에 호강하며 산다우 하시며 자랑하고픈 표정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다.
그리고 옆에 함께 앉아있는 아들, 딸,며느리들이 좀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행복해들 하시는데 자주 좀 모시고들 다니지…. 이윽고 악단의 연주를 시작으로 막이 올라갔다.
그리고 얼마 않있어 주인공 금봉이란 여인이 죄수복을 입고 자기의 친 아들로부터 법정에서 구형을 당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바로 그 때 대부분의 모든 관객들로부터 혀끝 차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어서 연신 훌쩍이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주인공이 시어머니 한테 구박을 받는 장면에서는 여기저기서 ‘애구 우리 시엄니는 더했어’ ‘옛날에는 모두다 저런 시집살이 안해본 사람 있간디’ 하며 즉각적인 반응들이 쏟아져 나왔다.
눈내는 밤 군밤사러 나온 친아들이 주인공에게 ‘아줌마 이거 잡수세요’하며 군밤 한 알을 내미는 장면에 있어서는 꺼억꺼억 목을 놓아 우는 할머니도 계셨다.
그런가 하면 아들, 할아버지, 할머니 셋이서 나란히 앉아 구경을 하던 앞자리에서는 무슨 사연인지는 몰라도 50세가 넘은직한 아들이 훌쩍훌쩍 우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 되는 할아버지께서 아들 목을 끌어안고 함께 우셨고 그 옆자리에 할머니께서는 셈인지 골인지 한 말씀도 않으시다가 공연도중에 횅하니 나가시는 광경도 있었다.
공연장 관객 모두는 저마다의 사연을 회상하면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계시는 것이다. ‘박달재’ 노래가 나올 때는 함께 노래를 불렀고 주인공이 자기 친아들이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서 판검사가 되었다고 하는 대사에 있어서는 현실인 것처럼 아낌없는 박수를 치셨다.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요즘같이 관객없는 연극 만을 경험하다가 이렇게 흐믓한 공연장의 열기를 맛보다니…. 나는 지금껏 어떤 연극을 해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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