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먼저 들어 '삽'이라는 글자가 있다. 안타깝게도 웹 상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나, 비 우(雨) 밑에 첩(妾) 자를 써서 어째 수상하게 생겨먹은 글자다. 음과 훈을 풀면 '가랑비 삽'이지만, 첩(妾) 생각나기 좋을 만하게 내리는 가랑비를 나타낸다는 해석은 아주 그럴 듯하다. 만일 고스톱을 배워 맛들인 중국인이 봤다면 비 우(雨) 밑에 그림화(畵) 하는 또 하나의 상형문자를 고안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농경사회의 오랜 습속으로 사료되지만 우리 민족은 비가 내리면 그 비가 이로운가 해로운가를 따지는 경향이 몸에 밴 듯하다. 1920년까지만 해도 농촌인구가 국내 전체의 80%를 상회했으니까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것이다.
며칠 전 대전지방기상청에서는 이틀 동안 내린 비의 경제적 가치를 1518억 9600만원으로 추산했다. 대기 정화 기능 1183억 7200만원, 용수 공급을 위한 원수 가치 140억원, 도시 및 도로 청결 효과 16억 4400만원, 토양 수분 공급 8억 7900만원이라는 것이다. 물론 산출 근거에 대해서는 아직 따져보지 않았다.
하기야 따져봤댔자 하늘의 구름을 재료 삼아 비를 내리게 하는 시대가 곧 도래할 판에 무슨 실익이 있겠는가. 그땐 아마 예보관이 "인공강우가 호남지방에 낮 한때 몇 ㎜, 충청지방엔 한두 차례 내리겠으며 예상 강우량은 몇 ㎜… 영남지방엔 주말까지 인공강우 계획이 없습니다"라는 일기예보를 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그런 시대가 미구에 곧 닥칠지도 모르겠다.
지금부터 나는 언어적 진실과 과학적 상상력에 입각하여 말하려 한다.
안개보다 좀 굵은 비를 는개라 한다. 비의 가장 작은 크기가 0.2㎜라니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될 것이다. 이슬비는 아주 가늘게 오는 비, 가랑비는 조금씩 내리는 비. 그게 그거면서도 다른데 다시 정리하면 안개보다 굵은 것이 는개, 는개보다 굵은 것이 이슬비, 이슬비보다 굵은 비를 가랑비라 보면 된다(는개<이슬비<가랑비).
가랑비 중에서도 조용하게 보슬보슬 내리는 비를 보슬비라 한다. 소리도 없이 이별의 부산 정거장에 내렸던 비, '포구십리에 보슬보슬 쉬지도 않고 내리는 비는 긴 여름날의 한 나절을 모래알만 울려 놓았소'라고 김안서가 읊어놓은 시가 바로 보슬비다.
여기서부터는 담배씨, 아니 호박씨만큼만 비약을 해서 비 얘기에 약방의 감초 격인 연애 얘기를 약간만 가미하기로 한다. 초복, 중복, 말복에 비가 내리면 보은 대추골 처녀들이 비처럼 눈물을 뚝뚝 흘린다고 전해온다. 삼복 즈음에 대추가 여무는데 이때 비가 오면 대추 농사를 망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해 시집가기 그를 건 정한 이치다.
오죽이나 사무쳤으면 이날 오는 비를 삼복우(三伏雨)라 이름 붙였을까. 오늘날의 보은 처녀들은 그러지 않는다. 이제 소멸시효도 지났으니 개인사를 살짝만 풀어놓는 것도 허락되리라 보는데, 개인적으로는 낭만주의도 퇴폐주의도 아닌 묘한 것들이 마구 뒤섞인 한 컷 흑백필름 같은 장면이다.
하여튼 낭만 깃들인 우수랄까, 우수 깃들인 낭만이랄까, 그런 분위기가 촉촉하게 젖어 있다 싶으면 랭보, 아폴리네르, 뮈세, 네르발... 누구의 것이든 나는 연애편지에 곧잘 써먹었는데 사실은 내가 남에게 써준 연애편지만도 수천 통에 이른다. 물론 내 것과 비중이 같을 리 만무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건 할 준비로 철통같이 무장되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하루, 편지에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레니에의 시를 적어보내게 된다. 화단의 봉숭아가 물에 반쯤 잠긴 날로 기억되는데 〈물에 젖은 정원〉이라는 시였다. '비가 온다, 그러면 나는 눈을 감고 모든 빗소릴 한꺼번에 듣는다' 어쩌고 하는 시를 인용했다. 며칠 후 답신이 왔다. 그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습니다."
지금도 나는 장대비라도 오는 날이면 지금 아내와 그때 일을 회상하며 조용히 웃는다. 가급적 이런 얘길 하지 않으려 했는데 빨리 글 한 편 올리라는 성화에 하는 수 없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아르투어 임호프가 말했듯이 인간이란 원래 오래 지속되는 관계에 적합한 동물이 아닌가 보다. 내가 지조나 의리는 좀 있는 축에 속한다고 자부했었는데 오늘 보니 그도 별로다.
한때 나는 그때 그 비가 백만 달러 짜리라고 긁적거린 적이 있었다. 어림셈을 해보더라도 엊그제 기상청의 계산법에 비하면 도시 및 도로 청결 효과(16억 4400만원)보다는 작고 토양 수분 공급 효과(8억7900만원)보다는 꽤 높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세계에는 돈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고 어버이의 사랑처럼 돈으로 환산하지 못할 것도 있다는 사실이다.
비의 효과에 있어서도 대기 정화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정화된 것, 대자연이 푸른 옷을 한 겹 더 껴입는 것, 물꼬싸움 벌인 이웃끼리 하늘보며 화해한 것 등등, 돈으로 환산 못하고 누수되는 가치가 적지 않다. 참고로, 1984년 8월 말일부터 4일간 내린 비로 엄청난 수해를 입었었을 때 총 피해액은 1333억원이었는데, 인공강우는 비구름으로 발달하기 전에 '나쁜 비'를 미리 내리게 함으로써 수해 예방 수단이 되기도 하니 피해액도 현저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만약에 인공강우로 비를 내리고 상용화할 무렵이면 집집마다 이번 달 비가 얼마큼 내렸는데 얼마가 소요됐고 얼마 어치를 내렸으니까 얼마를 내라는 식으로 다달이 빗물요금 고지서가 날아들지 지금은 모르며, 인공강우란 것도 이치로 보면 수돗물처럼 하늘의 물을 끌어다 쓰는 셈이니까 대동강물을 팔아먹던 봉이 김선달보다 더 지독하다고 대놓고 욕을 들어도 할 수 없다.
인공강우로 1t의 물을 얻는데 이스라엘은 800원, 미국은 85원이 들며 우리나라는 200∼300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듣기로는 우리도 150억원 가량 들이면 수년 내에 인공강우의 실용화가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 정도라면 가뭄이나 호우 피해가 수조 원에 달한다고 보면 절대 밑지는 투자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나라인가. 서양보다 220년이나 앞서 측우기를 만든 나라다. 청계천 복개도로 밑에 원래 있던 수표교는 비가 오면 수위를 쟀던 수표가 있던 곳이었음에 비춰서도 우리는 빗물을 충분히 다스릴 만큼 과학적인 민족이다. 그런 자부심을 갖되 물을 잘 갈무리하고 관리하는 치수정책이나 또 물을 아껴 쓰는 지혜가 여전히 필요하다. 인공강우에도 결국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이용해야 하니까 구름도 아껴 써야 한다.
언젠가는 신문에 어제 얼마 어치의 비가 내렸다는 예보가 나오거나 인공강우를 나타내는 새로운 한자가 등장할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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