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더욱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지금 현재 많은 학생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현상이 눈에 띄게 증가하여 우리나라의 장래가 크게 걱정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현상을 선진국화되어 가는 과정에서의 성장과정이라 생각하여 바로 기술계가 경쟁력 있게 재구성되리라 생각한다. 기술자의 개념도 옛날과 변화되어야 한다.
우리는 몸이 성장하면서 체격에 맞게 옷을 맞춰 입어야하고 계절에 따라 옷을 바꾸어 입어야 한다. 이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이공계는 그렇게 많은 학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더욱이 앞으로는 1명이 인구 전체를 먹여 살리는 그런 시대가 올 수 있다. 고정관념을 깨고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보통 여름에 더우면 문을 열어라 하는 말이 요즈음에는 더우니 문을 닫아라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고 추우면 문을 좀 열라는 말이 옛날에는 생각도 못했다.
나이가 들었어도 생각이 바뀌면 젊다. 60세 어른이 20세 젊은이 생각으로 생활하면 육체적인 건강도 거의 생각대로 따르게 된다.
나는 나이 많은 어른이니까 고위관리자이니까 라는 고정관념으로 모든 것을 규정에 의한 틀에 넣고 세상을 보면 절대로 변화가 없다. 특히 어른들의 의식이 변화되어야 세상이 변한다. 나는 옛날에 그렇게 안 했는데 하는 마음이 가장 큰 문제이다.
또 지나친 규정이 발전에 저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규제를 많이 걸어놓아야 관리자로서의 권위가 서고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는지 생각해야 한다.
학교나 공공기관, 공무원 등에서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 중에 권위적인 심판관은 없는지 생각해 보자. 게임을 원활하게 진행시키는 심판이 현재 모든 분야에 필요하다.
아직도 규정에 너무 얽매이고 전통에 너무 집착하는 관리자는 없는가? 교육과 생각이 크게 변해야 21세기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이다.
관리자 한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그 영향은 엄청나게 큰 것이다. 전투에서 사단장이 판단을 너무 규정에 의해서만 생각하다가는 사단병력을 다 죽이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규정보다는 현실에 맞는 판단이 중요한 것이다.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법대로 규정대로 살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수천 년을 살다보니 너무 법대로 살다보니 인간사는 재미가 없고 정이 없어 조물주께 쫓아가서 우리 사람들에게 융통성을 주어야 살지 못 살겠다고 간청을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조물주는 융통성의 액체 한 양동이를 가지고 와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적정하게 필요한 양의 융통성 액을 뿌려 주었다고 한다.
회사원은 회사원에 맞게 뿌려주고 의사는 의사에 맞게, 목사는 목사에 맞게, 선생님은 선생님에 맞게, 교장은 교장에 맞게 각계각층의 사람 대표들에게 뿌려주고 마지막에 쫓아온 사람이 정치가였다고 한다.
조물주는 왜 그렇게 늦었는가 하면서 기분 나쁜 표정으로 남은 융통성 액을 다 뿌린 것이 너무 많이 뿌려서 정치하는 사람들은 융통성이 너무 커서 규정을, 법을 너무 오버(over)하게 되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너무 큰 융통성은 사회질서를 혼란하게 만들어 필요악이란 것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학교 교육에서도 학생지도 방법이나 교육 방법이 성과 면으로 과감하게 변해야한다고 본다. 변하지 않으면 옷이 몸에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교육에서 시설의 변화도 중요하고 교육과정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교육관리자들의 고정관념이 확 변해야 공교육이 활성화된다. 생각이 바뀌면 새로운 세상이 틀림없이 보인다.
3월의 폭설도 고정관념을 바꾸라는 신의 계시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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