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80년대 ‘에토스’의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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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80년대 ‘에토스’의 향수

젊은대지를 향하여

  • 승인 2004-04-27 00:00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현기영 저/ 화남/ 272쪽/ 9000원


5·18 광주 항쟁과 6·29 선언. 그리고 우리 사회의 커다란 전환점이 된 88올림픽 모두 80년대다.

그리고 80년대는 지금도 주말마다 아들과 남편을 거실 소파 앞으로 묶어둔 프로야구를 비롯해 영화와 수많은 환락 문화가 혼재했던 시대였다. 철학과 담론이 무성했던 시대. 이러한 80년대가 2000년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먼 기억으로 묻혀버리고 있다.

‘콩나물시루’ 버스도 여자 차장과 함께 없어지고 역시 ‘콩나물시루’라는 별명이 붙은 과밀학급도, 대학 배지를 달고 일류대생임을 뽐내는 일도 없어졌다. 기후도 변해서 온난화 현상으로 4월에 피던 개나리꽃이 3월에 핀다.

무엇보다도 큰변화는 사회 도처에서 권위주의가 도전받다 허물어지고 시민사회가 정치권력 수준까지 격상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촛불시위가 거리를 반미의 광장으로 만들고 제주 4·3에 대해 대통령이 그 당시의 정부를 대신해 공개 사과할 정도로 세상은 크게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80년대 투쟁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싸워 얻은 탈권위주의가 결국은 도를 넘어 정당한 권위까지 무시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오직 가볍고 유쾌한 것들뿐인 세상이다.

그리하여 80년대의 경험은 캄캄한 망각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80년대의 에토스(시대정신)가 이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도시의 거리에서 우렁차게 터져나오던 노래들 대신 이제 거리는 소비와 가벼움을 미화하는 기계음이 가득 메운다.

모두 7부로 나뉘어 38편의 산문들로 구성된 ‘젊은 대지를 위하여’는 글 대다수가 작가 현기영이 1980년대 초반에 쓴 것들이다. 소설로써 다하지 못한 작가의 은밀한 자기 고백을 담고 있는 이책은 암흑의 상황에서 피해 의식에 찌든 소시민성을 탈피해 보려고 나름대로 고민하고 몸부림쳐본, 한 작가의 의식과 행동의 궤적을 기록한 책이다.
저자는 이책에서 “돌아보면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위대한 민중시대인 1980년대가 망각속에 버려져 있다”며 가벼워져만 가는 21세기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다.

사진:저자 현기영씨는 80년대 ‘콩나물시루’ 버스를 추억하며 가벼워져만 가는 21세기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다. 사진은 여자차장이 문을 열어줄 것 같은 옛날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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