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텔레비전을 통해 만나는 밝은 그녀의 얼굴에서 가정폭력의 어두운 그림자를 읽지 못했기에 나중에 느끼는 당혹감이 더욱 컸으리라.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머니 세대와는 달리 학교도 다니고 사회활동도 하고 게다가 그 대단한(?) 돈을 버는 유명한 여자도 어머니 세대가 겪은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는 것이 믿기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두고 사람들은 남편과 아내, 각각의 입장에서 이런 저런 말들이 많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두고 보면 알 일이다.
그러나 누구의 말이 맞는지 따지기에 앞서 이번 사건은 지난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으로 파경을 맞았던 개그우먼 이경실씨, 외도가 문제가 된 탤런트 최진실씨 사건 등과 일련의 공통점을 갖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 여성 모두 가정경제에서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고, 외도 여부와 관계없이 가정폭력의 문제가 얽혀 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실제 지난 1998년 가정폭력특별법 시행 후 가정폭력을 이혼 소송의 직접 사유로 제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여성부 집계에 따르면 2002년 전국가정폭력상담소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17만7413건으로 해마다 4∼5%씩 증가하고 있고, 경찰청의 가정폭력사범 검거 건수 역시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회적으로 ‘양성평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고,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여성의 이혼 소송이나 파경의 직접적인 이유가 가정폭력, 외도 등 전통적 사유라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우리 사회의 전통적 성역할구조가 변화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이러한 변화에 대한 남녀의 수용 태도가 다르다는 사실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남성의 경우 일반적으로 양성평등의 ‘사회적’ 가치에는 동의하면서도, 그것의 개인적 실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여성들은 고학력화와 사회참여 증가로 양성평등의식이 오히려 강화되면서 가정폭력이나 외도 등의 전통적 사유에 대해서 더 이상 참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며, 배우자의 윤리를 강조하는 양상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남성들도 많이 변했다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여성의 역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속도의 지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년전 일본 에히메대 의학부가 부부의 사망률을 조사했는데, “남자는 부인이 있어야 장수하고, 여자는 남편이 없어야 오래 산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극단적인 설명이지만 부부간의 성역할 변화를 비롯하여 가족구성원간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건강한 다양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고통속에서 10년, 20년의 세월을 감내하는 소리 없는 피해자들은 계속 생겨날 것이다. 그리고 이들 피해자가 있는 한 가해자들의 불행한 고통도 계속될 것이다.
건강한 가정이란 문제가 없는 가정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가정이다.
또한 그 능력이란 저절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돌아오는 5월에는 그 능력을 쌓을 수 있는 무대의 주인공으로 우리 모두가 나서보면 어떨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