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유신 독재체제가 굳건하게 작동하고 있을 때였다. 소설은 한센병 환자들의 재생 치료 공간으로 알려져 있던 소록도를 배경으로하고 있었다.
독재자의 발언 한 마디 한 마디가 큰 영향을 끼치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곧바로 법정에 서야할 때였다. 이청준은 그런 상황에서 지배와 복종의 인간 관계 안에 자리잡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소설로 우회적인 형상화를 시도했던 것이다.
이 소설은 문단의 귀중한 스테디 셀러로 기록되고 있고 외국어로 번역되어 세계 시장에 나가있다.
이 소설에서 구체적으로 문제된 것은 우상이었다. 어떤 상황을 주관하는 사람은 대개 스스로를 뛰어나다고 여기고 또 그렇게 평가받고 싶어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행위를 나중까지 증거하기 위해 뭔가를 남기고 싶어한다.
즉 자기 우상을 만들려한다. 또 그런 사람 주변에는 그런 인물을 높이 띄워 올림으로써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 술수 부리는 자들이 몰려든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한 몰락과 처절한 배신으로 나타난다.
소설은 한센병을 앓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배척받던 사람들이 자의 또는 타의로 몰려 살게 된 소록도에서 일제 시대 병원장으로 일했던 주정수란 인물의 우상 만들기와 그 폐해를 환기시킨다.
5·16 군사혁명 후 병원장으로 부임한 조백헌 중령은 이 주정수의 행적을 반면교사 삼아 소록도를 한센 병 환자들이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환자들의 자활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경제적 터전을 갖춰주려 한다.
그러나 그의 노력이 종국에 가서는 환자들의 천국이 아닌, 환자들의 건너편에 선 정상인(正常人) ‘당신들’의 천국이 됨을 알게 된다. 자신의 마음 속에 스스로 깨닫지도 못했던 ‘자기 우상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음을 깨달은 조백헌은 스스로 그 곳을 떠나 버린다. 또 하나의 우상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사회 전반의 도도한 민주주의 흐름을 목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흐름에 비껴있거나 흐름을 막고 있는 부분이 여전히 있다. 소위 우리나라 몇몇 대형교회의 모습이나 정치과정에서 간혹 그런 현상을 발견한다. 그런 교회의 목회자나 어떤 정치인은 거대한 우상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때 우상화 된 개인도 문제이지만, 한 개인을 떠받드는 군중의 몰 이성이 더 문제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우상을 경계한 십계명 첫 번째 계명이다. 이성(理性) 없는 신앙은 우상을 만들고, 이성 없는 정치는 독재를 만든다.
18세기에 시대의 미성숙을 향해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칸트가, “네 이성을 사용하는 것을 겁내지 말라!” 라 일갈했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요즈음 우리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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