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풍삼 순천향대 교수·이순신연구소장 |
우선 우리 고장 아산시가 그동안 펼쳐왔던 지방문화제를 올해부터 ‘성웅 이순신’ 축제로 변경 실시하는 것부터가 그렇거니와 정치적으로도 노무현 대통령이 감동적으로 읽었다는 ‘칼의 노래’가 서점가에서 화제가 되더니 최근 또다시 탄핵 정국에서 노대통령이 다시 이 책을 읽고 있다고 해서 지금의 노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리는데 이 책, 행간의 의미가 더욱 커졌다.
소설가 김훈씨의 탁월한 문체로 그려진 이순신의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해지는 ‘칼의 노래’는 이미 베스트셀러를 넘어 스테디셀러로 자리 매김 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이순신은 정치인은 아니다. 정치보다는 칼을 섬긴 장군으로 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이 나라를 구원한 전쟁영웅이었다. 무인으로서 자기 직분에 최선을 다했다는 점 말고도 그는 ‘멸사봉공’이라는 덕목을 구현했다.
또한 ‘백의종군’으로 계급사회의 특성을 가진 무인사회에서 실천하기 어려운 가치를 오직 나라를 위해 충성한 탁월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순신의 삶이 순탄치 않았음은 그의 난중일기에서도 잘 보여 지고 있다.
따라서 후대 사람들의 이순신에 대한 사후 평가도 부침을 겪어온 것도 사실이다. 역사적으로도 단재 신채호 선생으로부터 춘원 이광수도 이순신을 국난극복의 영웅으로 그려왔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순신 담론의 시작은 박정희 정권에 이르러 기획되고 완성되었다. 아산의 현충사가 성역화 되고 전국적으로 동상이 건립된 것도 이때부터였고, 노산 이은상 선생이 ‘성웅 이순신’을 그린 것도 바로 이때다.
박정희의 요청으로 역사학자 이선근 박사가 청와대 국무회의를 통하여 특강을 한 것도 바로 이때로 전무후무한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 나라 근대화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정책 엘리트들의 정신적 모델은 바로 이순신 이었다.
그런 이순신 담론이 해체된 것은 1980년대 박정희 사후부터였다. 국난극복의 영웅 이순신은 그로부터 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듯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특히 문학작품을 통해 그려진 이순신의 모습은 과거 우리가 학교교육을 통해 배웠던 부분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이순신에 대한 폄훼 현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김탁환의 장편소설 ‘불멸’이 있다. 소설 ‘칼의 노래’에서도 그렇지만 이순신은 전쟁영웅으로부터 보다 인간적 요소로 재해석이 가능할 만큼 독자들에게 변주되고 있다.
이때를 같이하여 공영방송인 KBS가 올 8월부터는 지금의 무인시대 후속 프로그램으로 ‘불멸의 이순신’을 드라마로 제작 방영하여 우리 시청자들과 만나게 된다.
위의 두 소설을 중심으로 그려질 역사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어떻게 그려질지는 아직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간 이순신에게 덧칠한 페인트 부분을 벗겨 내겠다는 것이 KBS의 제작의도인 것 같다. 그 무엇이든 간에 역사적 진실이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산시가 지방문화제로 성장 발돋움하려는 ‘성웅 이순신 축제’는 계속될 것이고 이순신의 역사적 재해석은 우리시대 또 다른 담론으로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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