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속속 노정되어야 하고 새로 제시하는 이론적 틀이 현상을 인과적으로 잘 설명할 뿐만 아니라 믿음 체계의 본질에 있어서도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
라카토스라는 학자는 이러한 이론의 변화·발전을 ‘견고한 핵’과 프로그램이라는, 토마스 쿤은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란 진리에 대한 믿음의 체계, 곧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 체계의 본질과 핵심이 바뀌었음을 뜻한다.
새롭다는 것만으로 패러다임이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현상 설명력과 처방의 설득력이 높을 때 비로소 뿌리내리게 된다. 필자는 이번 제17대 4·15총선의 가장 큰 의미를 유권자 패러다임의 변화로 본다.
제15대 4·11총선 닷새 전 그리고 제16대 4·13총선 사흘 전, 한국의 언론은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굵직굵직한 뉴스를 유권자들에게 전하게 된다.
1996년 15대 총선직전, 비무장지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북한당국의 발표에 이어 박격포 등으로 중무장한 북한군이 전격적으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 며칠간 투입되었다. 2000년 16대 총선직전에는 남북한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곧 열릴 것이라는 합의문이 발표되었다.
각각의 사건들이 선거 직전에 터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선거를 코앞에 두고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는 점에서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긴장시키거나 감동케 할 요량에서 생산된 뉴스가 아닌 것 같았다. 대한민국 20세 이상의 매우 한정된 유권자를 겨냥한 언론 플레이라는 시각이 훨씬 그럴듯해 보였다.
2004년 17대 총선에선 어떤 사건이 ‘언론’을 통해 터질까, 하루하루 가슴 죄며 우려했으나 다행스럽게도 조용히 넘어갔다. 언론의 시각에서 보자면 ‘별일 없는’ 것이겠으나 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보다 더 큰 뉴스, 더 중대한 사건은 없다는 역설도 가능하다.
예전 총선에서 위력적이었던 큰 것 ‘한 방’을 정치권력이든 이에 편승한 언론권력이든,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든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본질적 변화를 빅 뉴스로 보지 않으면 무엇이 가슴 찡한 큰 소식이랴.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행위가 그 목적에 있어서 정당해야 하고, 절차적으로 적정할뿐더러 결론도출 역시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탁월한 식견과 판단을 새로운 변화로 보지 않으면 과연 쓸모 있는 변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3개의 권력체 중에서 유권자들이 직접 선거의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는 두 개의 권력은 이미 교체되었다. 교체하였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기 보다는 선거라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교체할 수 있다’는 경험이 역사발전을 위해 훨씬 더 중대하다.
변화만이 살길이라거나 변화가 만병통치약이라는 식의 주장은 곤란하다. 그러나 곪은 상처를 도려내고 치유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발전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하다면 왜,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것인가라는 화두와 씨름해야 할 때이다. 이번 17대 총선에서 나타난 국회권력의 변화가 우리들에게 던지는 숙제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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