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 50분발 부산 행 고속철도. 분초를 다투는 첨단 기술 속에서 매일 매일을 보내는 필자이지만, 최고 시속 300km, 지상에서 가장 빠른 교통수단에 오른다는 사실은 야릇한 흥분을 느끼게 했다.
얼마쯤 달렸을까…. “기차가 시속 300km로 운행하고 있다”는 열차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창 밖은 마치 비디오테이프를 빨리 돌리는 것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1899년 우리나라의 첫 철도인 경인선이 생겼을 때, 겨우 시속 20km의 열차를 탄 사람들은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라고 경이로운 시선으로 가득 찬 시승소감을 밝혔다.
대동아 제국을 꿈꾸던 일제가 만주 진출의 교두보로 건설하기 시작한 우리나라의 철도. 그 역사적 시작은 결코 유쾌하다 할 수 없겠지만, 어찌됐든 돛단배와 달구지에 싣던 물건들을 ‘철마’에 싣게 되면서우리나라는 비로소 근대산업사회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그로부터 105년이 흐른 지금. 당시보다 15배나 빠른 ‘고속철도 시대’를 맞게 된 한국은 또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철도청은 고속철도의 시간 및 수송비 절감효과를 연간 약 2조 4000억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어디 그뿐일까.
곧 고속철도 자체가 높은 부가가치의 수출상품이 될 것이고, 빠른 속도가 경제 전반에 불어넣어주는 활력은 단순한 수치로 계산할 수 없는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종래에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크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할 고속철도. 그렇다면 그 기술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물론, KTX는 프랑스 TGV사가 전수한 기술과 국내 연구진들의 최첨단 기술력이 종합된 총체적인 성과물이다. 그러나 그 가장 밑바닥, 근본 기저에 KISTI의 슈퍼컴퓨터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고속철도처럼 초고속과 안전이라는 상반되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할 경우, 슈퍼컴퓨터는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차량의 안전이 보장되는 한에서 낼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시속 몇 km인지, 최소한의 소음과 진동을 유지하기 위해 레일의 상태는 어떠해야 하는지, 차량과 레일의 피로수명은 어느 정도인지 등등 각각의 상황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상태를 연산해 내는 일은 고성능 슈퍼컴퓨터가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KTX의 기반시설 설계와 응용에 국내 최고 성능을 지닌 KISTI의 슈퍼컴퓨터가 다방면에 활용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슈퍼컴퓨터의 초고속, 대용량 연산능력을 기반으로 세상에 선을 보인 KTX. 이제 KTX는 시베리아 철도로 연결되어 유럽에까지 이르는 ‘철의 실크로드’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만약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거대시장 유럽이 우리 눈앞에 열리게 되고, 반대로 시베리아의 값싼 자원은 보다 빠르고 저렴한 비용으로 국내에 들어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국민소득 2만달러, 아니 3만달러 시대는 곧 도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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