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트라다무현'의 호접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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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트라다무현'의 호접몽

  • 승인 2004-04-1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봄빛이 그득하다. 논설실에 틀어박혀 안팎의 뉴스를 스크랩하다가 TV를 통해 대통령의 얼굴을 오랜만에 접하니 낯선 느낌이었다. 탄핵 한 달째를 맞은 대통령은 아직 봄이 아니라 한다. 도저히 봄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은 지금 낮잠을 자다 나비가 된 장자 같은 심경은 아닐까?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속에서 내가 되었는지 비몽사몽의 호접몽(胡蝶夢) 같은 걸 꾸고 있지나 않을까?

산행 길의 대통령은 개나리와 철쭉을 가리키며 비서가 말해줬다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심경을 토로했다. "봄날이 오려면 두 개의 고비를 넘겨야 한다"고 밝힌 대통령의 얼굴은 그늘에 반쯤 가려서인지 더 어두웠다. 미묘한 정치적 해석을 우려했음인지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때가 때인지라 탄핵 심판과 선거를 모두 의식해야 할 처지이기는 하다. 인간세계에는 정의(定義)하는 자와 정의를 당하는 자가 있다는 정의가 그야말로 실감나게 안겨든다. 동물을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만 파악하는 게 인간의 오래된 관습이 되어버린 것처럼….

지금 만인의 만인에 대한 늑대 현상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하나, 실제의 늑대가 인간 이상으로 '민주적'으로 다스리고 다스림을 받으며 자질이 부족하다싶으면 언제든 물러난다는 사실을 이르고자 할 따름이다. 우리가 깜박 잊고 있었던 게 아니라 "늑대는 늑대야" 하고 고정관념 속에 가두어두고 더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탓에 그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탄핵으로 권한이 정지된 대통령은 이렇게도 말했다. 등산길 벤치가 전부 쌍방향으로 되어 있어 우리가 이렇게 마주 볼 수 있다. 이런 게 변화이며 지금은 시대가 좌우 이념대립의 시대에서 지배구조 경쟁의 시대로 가고 있다는 것― 그 말의 당위는 접고라도 누가 붙였는지 '노스트라다무현'이라는 별호까지 붙은 대통령의 예언이 얼마나 적중할지 두 개의 고비를 넘어 봄 같은 봄을 맞이할 때까지 기다려봐야겠다.

한데 봄 풍경이 수상쩍다.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잎도 나기 전에 핀 개나리가 다 지고 나서 이제야 이파리가 돋아난다. 늘 보는 일이건만 일찍 핀 목련은 벌써 지고 파릇한 새 잎 기를 채비를 하는 품이 올 봄엔 어째 유난스레 보인다. 탄핵 한 달만의 산행 길에 본 봄꽃들도 아마 그러했을까? 봄기운은 자꾸만 무르익고 시간은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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