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영돈 편집부장 |
며칠전 필자에게 들려준 한 택시기사의 정치권에 대한 푸념이다. 한때 은행원으로 근무하다가 이른바 ‘사오정(?)’ 됐다는 운전기사는 사실 제16대 국회의원들에게 기대가 제법 컸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난 2000년 16대 총선은 유례 없이 후보자 재산 및 납세 그리고 병역 사항 등 개인정보가 낱낱이 공개됐고, 시민사회단체들의 낙선·낙천운동이 대대적으로 펼쳐졌었다.
이에 그동안 ‘차기 대선주자’ 운운하며 지역별 소맹주 행세를 하던 인사들과 함량미달인 기존의 정치인들이 유권자들로부터 대거 외면 받았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는 참신하고 능력 있는 것처럼 보였던 이른바 ‘386세대’가 대거 포진하는 등 정치권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펼쳐졌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그들 역시 금배지를 달고 여의도에 입성하면서부터 예전의 당찬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슬그머니 사라졌다.
소속 당의 지시와 선배정치인들의 눈치나 살피는 한낱 정치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에 불참할 정당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럴수록 우리 유권자들은 다시 일어서야 한다.
정치와 정치인에 대한 실망을 기권으로 표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의 감정적 대응에 불과하다.
기존의 정치계를 경고하는 효과보다는 오히려 정치계의 질을 더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지지할 만한 후보자나 정당이 없어 망설이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투표에 더 적극 참여해야 한다. 적어도 그런 사람들은 돈이나 연고에 표를 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실망만 하고 국민의 신성한 의무이자 권리인 투표를 하지 않는다면 결코 한국 정치개혁의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 6일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한번 유권자의 깨어있는 선거 혁명을 일으켜야 할 때다.
지난 16대 총선을 타산지석 삼아 후보자들에 대한 옥석을 엄밀히 가리는 작업을 또 해야한다.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줬더니 제 욕심 챙기기에만 바빴던 사람은 반드시 퇴출시켜야 한다.
또 선거 때마다 철새처럼 이당 저당 옮겨다니는 사람, 말은 청산유수처럼 잘 하지만 공약(空約)이나 남발하는 사람,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사람 등은 이번 총선에서 어김없이 솎아내야 할 것이다. 국민을 위하는 정치에는 ‘거물’이니 ‘정객’이니 하는 말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출중한 정치력과 조직력 등을 갖춘 인물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겸손하면서도 진솔한 인간성과 국민을 상전으로 받드는 자세, 그리고 유리알처럼 투명한 인생 경력을 갖춘 사람을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흔히 ‘뛰어난 인물·인재를 뽑다’ 또는 ‘국회의원’이란 뜻의 선량(選良)이라 칭한다.
선거의 주인은 바로 유권자다. 때문에 유권자들의 두 손에 국가 운명이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수완이 남다른 의외의 인물이 당선된다.
우리는 자질이 부족한 인물이 실제 적임자를 제치고 국회에 진출해 국정혼란을 초래했던 예전의 우를 다시는 겪지 말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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