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엄숙한 전반부 의식과 신과 인간 혹은 인간과 인간이 한데 어울리는 흥겨움 속의 후반부 놀이는 의례의 전형적인 절차로, 현대의 축제 속에도 이러한 성향이 남아 있는 것은 축제가 의례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이 같은 농경의례는 기본적인 구성이나 본질적 의미 등에 있어 민족이 함께 하는 공통된 특질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세부적인 절차나 의례의 부수적인 기능 등 구체적인 사항에 있어서는 지역에 따라 다른 특질을 보여주는 것이 또한 일반적인 현상이다.
지형과 풍토가 다르면 거기에 종속되는 삶의 방식이 달라지게 되고, 그 결과 전승 내용도 각자의 삶과 형편에 따라 변형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민속놀이에서 비중 있게 취급되는 향토성의 문제는 그러한 사실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매년 개최되는 크고 작은 많은 지역 축제들은 전통이나 연원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못함은 물론 향토성도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시대가 다르고 삶의 방식이 변화된 현재의 시점에서 농경생활의 한 반영인 민속의례나 놀이가 그대로 전승될 수는 없으며 또 그것이 바람직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현재 대다수의 지역축제는 민속유산을 온전히 전승하는 것도 아니고 또 제대로 계승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전통을 잇는다는 이유로 형식적인 면에 치중하고 현대인들의 관심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쇼프로그램이나 미인선발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정상적인 현상은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지역축제가 종합축제화 하고 또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축제의 정신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데 그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지역 축제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행사 관계자나 관련 연구자들에 의해 누차 그 문제점들이 제기되어 왔는데, 그러한 것들은 결국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여 현재에 적용시키느냐 하는 데로 모아지고 있다. 그 점에서 당진에서 열린 기지시 줄다리기는 지역 축제의 바람직한 사례로서 널리 소개할 만하다.
4월 1일 당제와 용왕제로 시작한 기지시 줄다리기는 4월 4일 국태민안과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면서 일련의 축제 행사를 마무리했다.
이미 지난 1982년에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된 이 지역축제는 둘레가 1m가 넘고 길이가 100여m에 이르는 줄 두 개를 마련하는데 볏단 3만 개가 소요되었다고 한다. 전체 무게만도 40여t이 넘는다고 하니 기지시 줄다리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벌어지는 줄다리기와는 그 규모에 있어서 비교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줄다리기 행사의 참가자만 연 5000여 명이 되어 지역주민들 누구라 할 것 없이 3월 한 달간을 줄다리기를 만드는데 온 힘을 쏟았다는 사실이다.
계절을 바꿔가며 벌이고 있는 주변의 지역축제들이 대다수 주민들의 외면 속에 관 주도로 형식만 겨우 갖춰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떠올린다면 기지시 줄다리기에 쏠린 주민들의 관심과 참여는 무척 값진 것이 아닐 수 없다.
더 욕심을 부리자면, 줄다리기의 연원이나 전승과정에 대해서도 깊은 천착을 이루어 그 행사가 어느 전통에 기인하고 또 어떤 경로를 통해 전해지고 있는가 하는 데까지 관심이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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