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세의 미인 클레오파트라가 애인 안토니우스와 만날 때에는 궁전 마루에 장미를 깔게 했고, 로마시대에는 상류계급의 파티 자리에도 장미를 깔게 하는 등 장미에 얽힌 신화나 전설은 매우 많다. 이 정열의 꽃을 우리나라 사람들도 으뜸으로 치고 있는 것을 보면 꽃에 대한 선호도 역시 외국풍에 휩싸인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옛 선비들은 눈 속에 피어나는 매화, 서리를 맞고도 피는 국화,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 산이면 어디에서나 흐드러지게 피는 진달래, 그리고 동백, 모란, 작약, 봉선화 등을 으뜸으로 여기고 꽃마다 화품(花品)을 매겼다. 이중에서도 진달래꽃은 우리민중들의 사랑이나 울분의 정서를 나타내는 ‘민중의 꽃’으로 상징되어 왔다.
그래서 일찍이 소월은 시 ‘진달래꽃’에서 떠나는 애인 앞에 “영변에 약산/진달래 꽃/아름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라고 노래했고 신경림은 ‘진달래’에서 “얼마나 장한 일이냐/꽃과 잎 꺾이면 뿌리를 그만큼 깊이 박고/가지째 잘리면 아예/땅 속으로 파고 들어가 흙과 돌을 비집고/더 멀리 더 깊이 뿌리 뻗는 일이/얼마나/아름다운 일이냐”고 민중의 힘을 노래했다.
이런 시들에서 우리는 진달래가 상징하는 것이 우리의 민족성을 절실히 대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의 꽃 선호는 대부분이 서양꽃을 으뜸으로 여겨 이제 꽃문화도 우리의 것은 없어지고 철저히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선조들은 꽃을 우리나라의 전통꽃을 최고로 삼았으며 예쁘고 밉고, 색깔이 좋고 나쁘고 하는 외적 형태보다는 그 꽃이 지닌 성품, 즉 내적 정신을 보고 선호를 분별했다. 그래서 선조들은 집에 꽃을 심을 때 아무 꽃이나 심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성품과 같거나 희구하는 내적 정신을 지닌 꽃을 심었다. 이 얼마나 지혜로운 선조들인가.
모든 것이 현대화 될수록 옛 것의 지혜가 점점 무시되고 있는 판에 심지어 집권 여당의 대표라는 사람까지 삶의 경륜을 지닌 “60대와 70대는 투표를 안해도 괜찮다. 집에 쉬셔도 된다. 그분들은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라고 말하고 있으니 꽃 한 그루 심는 데에도 지혜를 보인 선조들의 혜안과는 너무도 다른 인생관, 민족관, 역사관을 본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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