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꽃박람회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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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꽃박람회의 추억

  • 승인 2004-03-31 18:42
  • 최민호 행자부 지방분권지원단장최민호 행자부 지방분권지원단장
4월이 올 때마다 맨 처음 피는 꽃은 하얀 목련화와 노란 개나리, 그리고 뒤지랴 싶게 붉은 진달래와 철쭉이 분홍빛으로 산과 들을 물들이면, 이어서 온 산하는 마치 오버랩되는 영상과 같이 신록의 초록빛으로 물들며 짙어져간다.

눈을 가늘게 뜨고 먼 산의 아지랑이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졸졸졸 귓가를 적시며 흐르는 개울물의 속삭임.

비발디의 사계(四季)의 봄도 이렇게 시작되었다. 햇볕이 따사로우면 따사로울수록 가슴은 더욱 두근거렸지. 지난해 애인을 잃은 T.S.엘리어트는 겨우 내내 그나마 애써 참아두었던 실연의 상처를 꽃피고 눈부신 이 4월이 너무나도 잔인하게 못견디게 만들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이라 절규하였고, 주요한은 불놀이를 보며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라고 가버린 연인을 그리워하며 4월을 비통해하였다지만, 4월이 어찌 잔인하고 슬픈 달이기만 하겠는가.

재작년 4월의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는 유사이래 가장 아름답고 화사한 꽃과 바다와 봄의 잔치였다.

24일간 국내외 165만명이 다녀간 미증유의 축제였던 안면도 꽃박람회는 국제 공인후 본격 준비기간만 4년 8개월에 걸친 충남도 전지역 주민의 회심의 역작이었던 것이다.
‘꽃과 새 문명’.
꽃박람회의 이 주제를 연출하기 위해, 당시 실무적 책임을 맡았던 필자는 프랑스 파리의 국립자연사 박물관을 방문하였다. 문화부문을 관장하는 이브마리알랑(Yves-Marie Allain)씨와 우리의 주제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는 꽃도 인간과 같다고 생각하오. 꽃을 가꾸며 사랑스럽게 쓰다듬거나 음악을 틀어주면 꽃이 잘 자라고, 위협 협박을 하면 꽃도 잘 자라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과학적으로 실증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꽃에도 감정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요.” “뿐만 아니라 꽃은 보기도하고 듣기도하고 만지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꽃이 제각각 색깔이나 향기나 촉감이 다를 수는 없을 겁니다. 색맹이 수채화를 그리지는 못할테니까요.” “그렇겠군요.” “꽃이 5감을 가지고 있고 더욱이 감정마저 가지고 있다면 인간과 다를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꽃이 인간이라는 차원에서 인간과 자연이 대립이 아닌 합일이라는 동양적 철학에 입각하여 이 꽃의 6감을 주제관에서 연출하고 싶습니다.” “꽃도 생각을 한다는 겁니까?” “그렇고 말고요, 꽃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인은 바위도 나무도 생각을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도 고개를 숙이고 기원도 합니다. 애니미즘적 사고이지만 우리는 자연이 곧 인간이라는 공존의 자연관, 생명관을 가지고 삽니다.” “재미있군요.” “그래서 우리는 서구의 실존주의를 달리 봅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한국에서는 틀린 것입니다. 우리는,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라고 믿습니다.

꽃도 생각하므로.” “정말 재미 있습니다. 그런 주제를 연출할 수 있다면 안면도 꽃박람회는 정말 특별하겠습니다. 진정으로 함께 참여하고 싶군요.”
그러면서 알랑씨는 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질문을 하였다. “그런데 꽃은 뇌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나는 그의 푸른 눈동자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꽃의 마음속이지요.” 그리고 나는 그에게 질문하였다. “알랑씨는 알랑씨의 마음 속에 생각이 있습니까? 생각 속에 마음이 있습니까?” 파리의 실존주의자는 와인을 기울이며 웃을 뿐, 대답은 없었다.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의 주제관인 ‘꽃과 새문명관’은 이러한 컨셉으로 표출하고자 노력하였던 전시관이었다. 우리 조상들이 꽃의 색감으로 생활을 물들였던 각종 전시물을 선보이면서, 살아있는 꽃의 모습을 보이고자 식충식물도 출연하였고, 만지면 움직이는 꽃의 촉감도 빠뜨리지 않았고, 음악에 맞추어 춤추는 꽃의 마음을 연출하고자 꽃비 내리는 사이버 영상터널도 고안해 본 것이었다.

4월. 울긋불긋한 꽃들이 우리를 손짓한다. 그들의 손짓에 두근거리는 이 마음. 우리는 그들을 ‘꽃님’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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