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세이] 탄핵정국과 콘돔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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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에세이] 탄핵정국과 콘돔정국

  • 승인 2004-03-31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지금 인도네시아에서는 콘돔 사용을 허용하느냐는 문제를 둘러싸고 이슬람 신자와 정부 및 시민단체 사이에 갈등이 빚어져 선거 이슈로 부상했다. 4·15 총선을 앞둔 우리가 탄핵정국이라면 4월 5일 총선을 치르는 그쪽은 편의상 콘돔정국이라 칭하기로 한다.

아무튼 콘돔정국이든 탄핵정국이든 정치적 씻김굿을 벌인다는 점은 같다. 의사당 바닥에 넉장거리하며 울며불며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배를 올리고 읍소하는 것이 어찌 굿이 아닐 수가 없다. 쥐가 서 말인 청과물 공판장이나 한강둔치의 천막 당사를 옮긴 것도 다급함의 반영일 터다. 그로 말미암아 샛강이든 한강이든 한때 도천(盜川)에서 물 마신 죄를 사함 받을지 아직은 단언할 수 없다.

선거의 속성이 본디 총칼을 대신하여 표로 결판을 내는 전쟁이기에 천막과 야전 침대는 출사(出師)의 결의를 다지는 데 그 이상의 소품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오늘, 차마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각 정당과 선거 광고 텍스트나 숱한 환골탈태의 보디 랭귀지를 보고는 무슨 대단한 발견인 양 ‘유레카’라도 외치고 싶었다.

바로 칸 영화제 인쇄 부문 그랑프리를 받은 작품이다. 몸을 닦으려 허리를 굽힌 여자 뒤로 남자가 원반을 날리는데 절묘하게도 여성의 엉덩이를 희롱하는 동작처럼 착시를 일으킨다. 하나는 수건을 꺼내려는 여자 뒤의 남자가 기지개를 켜서 역시 음란기 섞인 오해를 연출한 광고다. 야당의 입장에선 이처럼 불륜인지 부정인지의 가치판단과는 상관없이 불륜이나 부정으로 연출된 것이 실패의 본질이기도 하다.

다른 하나로 검은 제복의 사제와 흰 수녀복을 입은 여자의 키스신을 담은 광고가 있다. 금단의 영역을 취급한 이 광고는 죄와 면죄의 정반대 개념에 등돌리지 않는 화해를 소름 돋을 만큼 극적으로 표현해냈다. 야당들의 탄핵공조가 이러한 흑백 구도의 기발한 연출로 먹혀들었던들 정체성의 괴리를 뛰어넘는 정반대의 브랜드 확장을 꾀했을 가능성도 있었다는 얘기다.

지난 주말 마감한 촛불집회를 예로 들면 그것이 건국 이래의 유쾌한 시위였더라도 원반 날리는 남자처럼 시각정보전달(visual communica tion)을 굴절시킬 소지는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촛불이란 촛불이 특정정당을 지지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말나온 김에 산천에 흐드러지게 핀 노오란 개나리꽃들일랑 불법 선거운동의 혐의에서 자유롭게 놓아주자.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든다. 가치중립에서 벗어나 탄핵이 잘못됐더라도 너무 그에만 얽매이다 보면 가령 어떤 여배우의 몸매가 섹스한가 아닌가로 평가하는 이분법과 무엇이 다르냐는 점이다. 이는 콘돔이나 아니냐에 판세가 달린 것과 다름없지 않을까.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을 잊고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를 잊고 그만 냉정해져야 하지 않을까.

내가 후보라면 천막 트럭 한 대를 성공한 벤처로 만든 ‘총각네 야채가게’처럼 불리함을 유리함으로 바꾸거나 중심 컨셉트를 통일시켜 신규 고객 창출에 나서겠다. 될성부른 장사꾼은 고객이 “NO!”를 외칠 때 비로소 장사를 시작한다고 한다. 그대가 둥지를 튼 곳이 짬뽕정당이라 돼지고기든 토마토든 뭘 넣어도 거리낌없거든 역으로 이점으로 활용하라. 보증브랜드인 정당 이름이 부끄럽고 당신이 당신의 상품조차 못 믿는다는데 당신을 얼마나 믿겠는가.

선거판에서 다시 확인한 것은 벗어도 예술 같은 작품이 있는가 하면 입어도 외설 같은 작품이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소비자(유권자)는 치즈버거 값에 고급 요리를 먹은 것 같은 기분일 때, 그러한 고품질 브랜드(후보)가 있을 때 선뜻 지갑을 열게 된다.

기본적으로 소비자는 의심이 많다. 콘돔이 혼외정사를 조장하므로 신의 노여움을 산다며 촉발된 콘돔정국, 썩은 국회가 약한 대통령을 몰아낸 듯이 도식화된 탄핵정국 중 성공한 브랜드 확장이 나올지, 아니면 부자 몸조심으로 그칠지는 보름 남짓 인내심으로 지켜봐야겠다. 보다 중요한 기준은 광고가 아니라 제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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