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하를 뒤덮은 모습은 마치 어머니의 포근한 품을 연상케 하고, 오염된 세상을 하얗게 바꿔 밝고 깨끗하게 한다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때 아닌 폭설로 영글어 가던 농업인의 꿈이 산산조각 났다.
갓난 아기 주먹만한 함박눈이 하늘을 뒤덮는 광경은 한 폭의 그림이었지만, 도로는 마비됐고 비닐하우스와 축사는 힘없이 무너져 농부의 얼굴에서 웃음을 빼앗고 말았다.
복구지원을 나간 우리 직원들도 피해현장을 보고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순백의 아름다움 이면에 철제파이프를 엿가락처럼 구부려 버린 파괴자의 모습에 할말을 잊었다.
밤새워 벌인 눈과의 사투에 지쳐버린 하우스 주인 농부의 깊게 파인 주름을 보며 가슴이 아파 왔지만 해야 한다. 할 수 있다는 전의를 불태우며 작업도구를 힘차게 고쳐 잡았다.
우선 비닐하우스로 접근하기 위한 제설작업을 하고 출입문을 열고 들여다 본 하우스 안의 처참한 광경에 직원들은 일순 얼어 붙었지만 침묵도 잠시. 3개조로 나누어 휘어진 철제파이프를 들어 올려 공기의 흐름을 터주고, 딸기 수확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시작했다.
밖에서는 하우스 위로 올라가 눈을 끌어 내리고 비닐에 구멍을 뚫어 고인 물을 빼내 무게를 줄이면 하우스 안에서는 힘 깨나 쓴다는 직원 7명이 휘어진 파이프를 들어 올리는데 이 작업이 말은 쉬워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부터 몸 사릴 줄 모르는 군대 실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1조 앞으로’ 낮은 포복으로 파이프 밑에 기어 들어가 구령에 따라 ‘하나! 둘! 영차!’하면 휘어진 파이프가 번쩍 들리고 뒤에서 대기하던 2조 인간 장대들이 펴진 파이프를 이어받아 받치면 1조는 전진 앞으로 다시 땅강아지처럼 파이프 밑에 포복 정위치 하고, 3조는 잽싸게 버팀목을 받치는 식으로 손발을 맞춰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 하나씩 파이프가 들려 올라가고 넓어지는 하우스 안의 공간만큼이나 농부의 얼굴은 밝아졌다. 망연자실하던 아침 모습과는 달리 꿈과 희망으로 밝아오는 주인 농부의 표정을 보며 고된 작업에도 불구하고 전혀 힘든 줄 모르고 복구를 끝냈다.
고된 작업이 끝나고 흙 투성이가 된 동료들 끼리 고생했다고 서로 격려하며 내 입안에 살살 녹아 들던 빨간 딸기가 이제는 눈(雪), 눈(雪)이 녹은 눈ː물로 인해 우리 농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뒷받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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