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지방자치부장 |
어떤 문제든 답(答)을 선택할 때는 크게 두 가지가 기준이다. 사안의 시비(是非)를 따지는 정당성(正當性)과 결과의 이해(利害)를 계산하는 현실성(現實性)이다. 즉 정당한 것이고 현실적으로도 득(得)되는 것이라면 선택의 고민은 필요 없다.
그러나 정당하지만 현실적으로 큰 문제를 수반하거나 정당하지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엔 정당성과 현실성 중 어느 하나를 포기하거나 또는 절충하는 방식으로 답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 작년에 겪었던 이라크 파병 문제는 반대론자들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도의 국제적 「현실」을 받아들여 그쪽으로 결론 낸 경우다.
대통령 탄핵 문제는 어떤가? 먼저 탄핵의 정당성, 즉 명분의 측면을 보자. 야당은 탄핵의 「죄목」으로 선거법위반과 대통령 자신 및 측근비리, 경제파탄을 꼽았다. 부패와 무능의 문제는 대통령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국민들은 지난 1년 동안을 겪으면서 의심하게 되었다. 대통령 지지도 20_30%는 그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정치적 공세용의 탄핵감으론 가능해도 법적 탄핵의 사유가 되기는 어렵다.
대통령이 이번 총선에서 "여당을 지원하고 싶다"며 야당을 자극하여 탄핵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선거법 위반이고, 이것이 그나마 탄핵의 법적 요건을 마련해 주었지만 논란이 있다. 야당은 대통령의 '부패'와 '무능'을 명분으로 삼고 선거법 위반을 탄핵의 법적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국민들은 대통령의 이런 「죄」를 정치적 공격의 대상으로는 보면서도 법적 탄핵 대상으로까지는 인정하지는 않았다. 탄핵 전후의 여론 조사는 그렇다. 야당도 이것들을 탄핵의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정말 「탄핵감」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당초 탄핵에 주저하는 야당의원들이 꽤 있었다는 것도 이런 의미일 것이다.
야당은 오히려 대통령을 갈아버림으로 기대되는 국가적 이득(利得)을 국민들이 계산할 수 있고 그래서 이해해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 법하다. 어느 정도의 반발을 무릅쓰고라도 밀어붙이면 탄핵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아니었을까?
대통령에 대한 낮은 지지도(20-30%)는 탄핵의 현실성에 대한 기대를 높였을 것이다. 사람까지 죽게 만든 대통령의 실망스런 회견과 국민들의 이에 대한 불만스런 반응은 탄핵의 「현실성」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명분 즉 정당성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탄핵을 감행하도록 한 데는 '현실성'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마침내 「거사」가 감행되었지만 TV를 통해 볼썽사나운 거사의 현장을 지켜본 국민들의 맘을 얻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역풍이 되어 돌아오고 탄핵의 현실성은 급락했다. '현실성'을 재는 중요한 척도는 국민의 뜻이고 이것은 요즘 여론조사로 수치화된다. 어제 아침 조선일보로는 탄핵 반대가 71%고, 이 문제가 불거진 이후 대체로 70% 안팎이다. 수치상으론 탄핵찬성론자가 최대 30%선이란 말이므로 탄핵의 실현 가능성은 훨씬 더 떨어지는 셈이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총선 이후에 이뤄진다면, 대통령 스스로 진퇴여부의 기준으로 삼겠다고 한 4월15일 총선의 결과가 탄핵의 '현실성' 즉 가능성에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다.
18일 첫 평의에서 헌재가 대통령에게 30일 출석을 요구한 걸 보면 선거 후 결정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국민의 뜻인 총선 결과라는 결정적 변수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대통령 탄핵은 '정당성'과 '현실성'에서 모두 부정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헌재의 결정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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