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2004년의 3월은 농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국민의 마음을 멍들게 하는 커다란 사건으로 시작해 왔다. 알다시피 우리 지역에서는 100년만에 처음으로 내린 3월 폭설로 인해 겨우내 가꿔왔던 농작물과 시설물의 붕괴로 수확을 눈앞에 둔 농민들은 실의와 좌절에 잠겨있고, 연이어 터지는 탄핵이라는 헌법책에서만 보아왔던 그것이 실제 정치세계에서 실현되는 초유의 경험을 하며 과연 우리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동안 나는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던 자연재해와 정치적 사건으로 인해 우리 모두가 느꼈던 아픔과 갈등을 느끼며 몇 날 밤을 지샜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이 두 가지 사태가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굳이 따진다면 전자의 경우 기상예보의 흐름과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잘못이 있었겠고, 탄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이를 실행한 정치권의 입장과의 괴리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먼저 폭설로 인한 우리 대전 시민의 출퇴근의 지옥은 며칠간의 고통으로 끝났지만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그때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유성지역은 광범위한 농촌시설지역이 존재하고 있는 곳으로 금번 폭설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그래도 피해현장에 나가보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일손을 거들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모습을 볼 때면 그래도 우리네 서민들에게는 서로의 아픔을 감싸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정이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탄핵정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싸늘할 수밖에 없다. 탄핵이 초래된 과정과 책임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는 현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므로 공개된 지면을 할애해 이를 규명한다는 것은 또 다른 논란거리를 낳기에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아직까지 분명한 것은 폭설로 무너진 농가에서 내가 보았던 봉사자들의 따뜻한 정이, 탄핵으로 대치하고 있는 정치권과 이에 따른 국민들의 갈등속에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 정치권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너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2004년 3월은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3월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우리가 겪어보지 못했던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일거에 분출되어 아픔과 혼란을 겪고 있지만 판도라의 상자에 갇혀 누군가에 의해 다시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희망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듯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힘든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요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누가 다시 닫혀진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희망이라는 목소리를 세상에 울려 퍼지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우리가 뽑은 우리의 대표자라는 국회의원이 열쇠를 쥐어 왔다면 이번에는 우리 국민이 판도라의 상자를 다시 한번 열어 보는 주체가 되어 보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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