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순택 논설위원 |
영화의 중심에 바람둥이였던 큰 아들의 배다른 딸이 있다. 13년 전 돈을 훔쳐 가출한 그를 반기는 사람은 없다.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갈등은 풀리고 어머니의 속 깊은 사랑을 떠올리면서 기적처럼 화해의 손을 내밀게 된다. 임 감독은 화해의 마당이라면 장례식도 축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흔히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라고 한다. 출마자와 유권자가 함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희망의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이니 축제여야 함이 당연하다. 선거가 진정한 축제로 승화되려면 영화와 마찬가지로 화해의 마당이 열려야 한다. 정치적 경쟁의 핵심은 상대주의에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페어플레이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야 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해야 한다.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서로 손을 맞잡고 씻김굿과 같은 화해의 마당으로 매듭지을 때, 그야말로 축제로 완성되는 것이다.
삶의 장뿐 아니라 현실 정치의 장에서도 중요한 것은 이해와 화합인 것이다. 하지만 선거는 승자에게만 축제일 뿐, 패자에게는 막막한 세월과의 조우이고 정처 없는 여행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대선 이후 단 한번도 화해를 위한 씻김굿이 없었기에 지금의 혼란 정국이 왔다면 겉넘는 소리일까.
민주주의의 축제여야 할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분위기는 영 아니다. 유권자들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다. 축제는 난장판으로 가려하는 속성이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그선마저 넘을 것으로 보이니 걱정이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한 대통령 탄핵안이 야당 공조로 국회에서 가결되고,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되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탄핵 가결 이후 반대시위가 잇따르고 여당의 지지율은 치솟고 있다. 반면 야당은 거센 역풍과 내홍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총선의 성격은 정치 개혁을 위한 국회의원 물갈이 차원을 넘어 대통령 직이 걸린 사생결단의 전쟁터가 될 판이다. 총선과 재신임 연계를 천명, ‘총선 올인’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지만 한나라당 최병렬 총재 역시 “친노(親盧)-반노(反盧)간 사생결단의 장이 된 총선에서 기필코 이겨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쯤되면 총선 선거전도 걱정이지만 그 후도 두렵다. 각당이 사생결단하듯 하는 것을 보면 총선이 나라를 아주 뒤집어놓거나 바꿔놓을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정신 좀 차려라”라고 말해 봐야 아무 소용 없을 듯 하다. “선거는 사생결단의 전쟁이 아니라 축제여야 한다”고 말해 봐야 입만 아플 것 같다. 앞뒤를 꽉꽉 틀어막고 힘자랑만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얘기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되찾고 심판을 준비해야 한다.
선거판을 화해의 마당으로 만들 것인지, 전쟁터로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의 몫이다. 역사의 고비를 힘차게 넘어온 우리 국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 결과에 따라 이번 사태는 발전적 변화를 위한 값진 진통으로써 이 땅에 실질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도덕적 민주 사회의 새로운 정치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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