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세이] ‘축제’와 ‘전쟁’

  • 오피니언
  • 독자 칼럼

[시사에세이] ‘축제’와 ‘전쟁’

  • 승인 2004-03-19 00:00
  • 안순택 논설위원안순택 논설위원
▲  안순택 논설위원
▲ 안순택 논설위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축제’의 무대는 당황스럽게도 초상집이다. 어머니의 삼일장이 축제라니, 패륜이니 호로 소리 듣기 딱 좋을 일을 임 감독은 왜 꾸민 것일까.

영화의 중심에 바람둥이였던 큰 아들의 배다른 딸이 있다. 13년 전 돈을 훔쳐 가출한 그를 반기는 사람은 없다.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갈등은 풀리고 어머니의 속 깊은 사랑을 떠올리면서 기적처럼 화해의 손을 내밀게 된다. 임 감독은 화해의 마당이라면 장례식도 축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흔히들 선거를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라고 한다. 출마자와 유권자가 함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희망의 미래를 설계하는 시간이니 축제여야 함이 당연하다. 선거가 진정한 축제로 승화되려면 영화와 마찬가지로 화해의 마당이 열려야 한다. 정치적 경쟁의 핵심은 상대주의에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페어플레이를 통해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야 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해야 한다.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서로 손을 맞잡고 씻김굿과 같은 화해의 마당으로 매듭지을 때, 그야말로 축제로 완성되는 것이다.

삶의 장뿐 아니라 현실 정치의 장에서도 중요한 것은 이해와 화합인 것이다. 하지만 선거는 승자에게만 축제일 뿐, 패자에게는 막막한 세월과의 조우이고 정처 없는 여행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대선 이후 단 한번도 화해를 위한 씻김굿이 없었기에 지금의 혼란 정국이 왔다면 겉넘는 소리일까.

민주주의의 축제여야 할 총선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분위기는 영 아니다. 유권자들의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다. 축제는 난장판으로 가려하는 속성이 있다. 하지만 이번 총선은 그선마저 넘을 것으로 보이니 걱정이다.

국민 대다수가 반대한 대통령 탄핵안이 야당 공조로 국회에서 가결되고, 대통령의 권한은 정지되었다.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탄핵 가결 이후 반대시위가 잇따르고 여당의 지지율은 치솟고 있다. 반면 야당은 거센 역풍과 내홍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총선의 성격은 정치 개혁을 위한 국회의원 물갈이 차원을 넘어 대통령 직이 걸린 사생결단의 전쟁터가 될 판이다. 총선과 재신임 연계를 천명, ‘총선 올인’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도 그렇지만 한나라당 최병렬 총재 역시 “친노(親盧)-반노(反盧)간 사생결단의 장이 된 총선에서 기필코 이겨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쯤되면 총선 선거전도 걱정이지만 그 후도 두렵다. 각당이 사생결단하듯 하는 것을 보면 총선이 나라를 아주 뒤집어놓거나 바꿔놓을 것만 같아서 하는 말이다.

“정신 좀 차려라”라고 말해 봐야 아무 소용 없을 듯 하다. “선거는 사생결단의 전쟁이 아니라 축제여야 한다”고 말해 봐야 입만 아플 것 같다. 앞뒤를 꽉꽉 틀어막고 힘자랑만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얘기가 귀에 들어오겠는가. 이럴 때일수록 냉정을 되찾고 심판을 준비해야 한다.

선거판을 화해의 마당으로 만들 것인지, 전쟁터로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의 몫이다. 역사의 고비를 힘차게 넘어온 우리 국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줄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그 결과에 따라 이번 사태는 발전적 변화를 위한 값진 진통으로써 이 땅에 실질적 민주주의를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도덕적 민주 사회의 새로운 정치임을 잊지 말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가을단풍 새 명소된 대전 장태산휴양림…인근 정신요양시설 응급실 '불안불안'
  2. [사설] 의료계 '정원 조정 방안', 검토할 만하다
  3. [사설] 충남공무원노조가 긍정 평가한 충남도의회
  4. 대전사랑메세나에서 카페소소한과 함께 발달장애인들에게 휘낭시에 선물
  5.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1. 제90차 지역정책포럼 및 학술컨퍼런스 개최
  2. 국방과학일류도시 대전 위한 교류장 열려
  3. '한국탁구 국가대표 2024' 나만의 우표로 만나다
  4. 충남대병원 응급의학과 학술적 업적 수상 잇달아…이번엔 국제학자상
  5. 건양대병원, 시술과 수술을 한 곳에서 '새 수술센터 개소'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