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평 大地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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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평 大地主

  • 승인 2004-03-16 00:00
  • 김우영김우영
나는 사방에 백만 평의 땅을 가진 대지주이다. 이런 부자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집 한 채 있다고, 자기 땅이 좀 있다고 으스대고 거만하게 구는 사람들을 보면 가엾고 한탄 스럽다. 이들이 가진 것 없는 자들을 업신여기고 그 위에 군림하려는 것을 보면 더욱 가관이다.


내가 이 땅을 소유하기 시작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그렇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보다 훨씬 이전부터이다. 이 땅을 가지기 위해서 긴 세월 동안 아롱진 꿈을 꾸고 갈등도 겪고 나름대로 피와 땀의 노력을 했기 때문에 소유하기까지는 약 20여 년을 잡아 주는 게 좋을 듯싶다.


돌이켜 보면 처음부터 이 땅을 소유하려는 목적은 아니었다. 그저 소년 시절에는 한없이 넓고 푸른 이 땅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장미나 목련이 피는 정원을 가꾸며 꿈 같이 사는 게 좋아서 흰 종이 위에 갖가지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예쁜 아내와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사는 동화 속의 소박하고 찬연한 삶을 말이다. 그저 욕심 없는 낭만적 목가의 로맨티시즘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진짜 땅 소유자가 되려는 예행 연습을 했었다. 열심히 습작을 만들어 선생님께 보여 드렸다.
“싹수가 보이는구나. 차분히 사물을 보는 견문을 넓히고 꾸준히 노력을 해 보아라.”


그 후 우쭐한 기분으로 여러 번 습작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한계와 무능이 창피스러워 자책하며 잠시 포기도 했었다. 스무 살이 되기까지 그렇게 삶에 대한 회의와 허무, 사랑, 갈등, 희망이 반복되는 어설픈 나날을 보냈다.


스무 살이 넘어 잠시 서울에 가서 생활을 했다. 우연히 ‘S문학회’를 알게 되고 그곳에서 훌륭한 사람들을 만나 교유(交遊)했다. 그리고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다니면서 백만 평 대지주의 기초적인 면면을 닦기 시작했다. 정열적으로 소양과 기량을 닦으면서 나름대로 개안이 되었다. 생업은 외면을 한 채 그쪽에만 심신을 기울였다.


그러던 와중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만나고 보니 그도 중학교 시절부터 백만 평 대지주가 되거나 그의 아내가 되는 게 꿈이었단다. ‘아, 이런 운명적인 조우가 있단 말인가!’


자주 만나면서 우린 어느 날 갑자기 ‘부부’가 되어 버렸다. 이른바 ‘백만 평 대지주 부부’가 되는 행복의 순간이었다. 부부가 되는 길이 이처럼 쉽나 싶었다. 문득 주위의 노총각, 노처녀들이 자만과 욕심으로 명예, 재물, 권위 따위의 형식만 쫓느라고 짝을 못 찾아 안달하면서 사회의 모순 탓으로 돌리는 것이 우스웠다.


우린 이러한 형식을 모두 버린 채 순수한 ‘열쇠 2개’로 만났다. 하나는 파란 마음을 여는 열쇠였고, 나머지 하나는 순수의 몸을 여는 열쇠였다.


하여간 그렇듯 궁합이 잘 맞아 우리는 비 오는 날 마로니에 거리를, 눈 오는 날 덕수궁 돌담길을 돌면서 백만 평 대지주의 꿈을 키워 갔다.


그러기를 3년. 1987년에 ‘바람이 머무는 자리에’로 등기 갱신을 했다. 이제 좀 백만 평 대지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주위로부터 인정을 받나 싶은 염치없는 기대를 갖기도 했으나 별로 신통치 않았다. 또 치열하게 정신적 물갈이를 해야 한다는 자답이 이내 나왔다.


저 험한 광야에 씨 뿌리고 갈고 하는 사이 또 수년이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는 자꾸 등기를 갱신해야겠다. 까짓 열 번이면 어떻고 백 번이면 어떠랴. 백만 평 대지주로서의 진면목을 가꾸는 과정은 내밀한 기쁨과 보람이 함께 하는 것을. 이 백만 평(사방 1㎝ 남짓한 200자 원고지 한 칸을 말 함) 대지주의 축복받은 땅 위에 아담한 집을 짓고 영혼의 씨를 뿌리며 사색의 땅을 갈고 영원히 살아갈지어다. 백만 평이라는 광활한 대지주의 부자라는 자신감으로 순진무구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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