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경주 최 부자 가문이 있었다.
‘경주 최 부잣집 300년 富의 비밀’(전진문 지음)은 저자가 대학강단에서 30년 넘게 경영학을 강의하면서 학생들에게 “우리나라에도 존경할 만한 부자가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곤혹스러워했던 아픈 경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존경할 만한 부자의 표상을 찾아 나선 노력의 결실이다. 저자는 대구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와 한국산업경영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부자의 모델을 찾던 저자의 눈에 번쩍 띈 가문이 바로 경주 최 부잣집.
경주 최 부잣집은 신라시대 최치원의 17세 손인 조선시대 최진립과 그 아들 최동량이 터전을 일구고 손자(19세 손)인 재경 최국선(1631~1682)으로부터 28세 손인 문파 최준(1884~1970)에 이르는 10대 약 300년 동안 부를 누린 일가를 일컫는다.
이 집안은 ‘부자는 3대를 못간다’는 우리 속담을 뒤집고 무려 10대에 걸쳐 300여년 동안 만석꾼 가문을 유지했다.
책은 부자의 대명사로 이름을 떨쳤던 경주 최씨 집안의 비결과 숨겨진 노하우를 현대 경영학으로 풀어놓았다.
저자는 최 부잣집이 오랜 세월 동안 재산을 유지하고 관리할 수 있었던 비밀은 독특한 전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이 집안에는 정신적 기반이 된 가훈이 있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재산은 만석 이상 지니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어라, 사방 백리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등 6가지 가훈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부와 권력을 한꺼번에 가질 수 없으므로 부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권력만을 가질 것,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화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는 의미에서 재산의 한계를 정해 이를 넘지 말 것, 재산을 불리는 과정에서 인간관계나 사회적 책임을 무시한다면 그 부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다는 것 등 해서는 안 될 것과 반드시 해야 할 것에 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저자는 “최 부잣집은 단순한 부호가 아니라 9대에 걸쳐 진사를 지낸 지식있는 양반 부자로 정당하게 부를 축적하고, 그 부를 적절히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민중의 존경을 받은 부자였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본다면 경영 이념을 확고히 가진 경영자로 사회적 책임을 다한 존경할 만한 부자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225쪽. 황금가지. 1만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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