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기에 학문에 대한 인기(人氣)는 농학에서 공학으로 쏠리어 공학문야에 모여든 우수한 인재들이 각 분야에서 30여년 동안 국가 산업 인프라를 공업으로 구축하고, 눈 부신 발전을 이룩해내어 오늘날 수출 세계 12대 강국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농학에 공학을 접목한 농사기술의 과학·기계화는 농자지대본(農者之大本)를 부르짖지 않아도 적은수의 인원으로 수십배의 소출과 양질의 농산물을 얻을 수 있었고 넓은 농지와 많은 일손이 필요했던 대가족의 농경 사회구조에서 산업 역군이 대량생산 공장으로 모여들면서 핵가족 구조의 대도시 산업사회로 변화하였다.
또한 기술 수준이 높아지고 새로워지면서 단순한 부품생산이나 수입 부품조립 기술을 벗어나 설계 제작기술 단계로 발전하여 같은 공학분야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달라졌고 학문에 대한 인기도 중화학공업정책이 집중되던 때에 섬유·화공분야에서 기계·전기분야로 치중되었으며 이어서 선박·자동차·전자공업이 앞장서더니 1990년대 말에는 컴퓨터·정보산업으로 쏠렸다. 그리고 로열티(Royalty)제공 생산기술과 외국 유명상표의 OEM방식에서 차츰 우리 기술에 의한 우리상표의 제품 생산으로 발전하고 있다.
산업형태는 선진국으로부터 생산장비를 수입하여 이루어진 섬유와 화공분야의 장치산업에서 차츰 기계, 중전기, 가전제품 생산으로 발전하였고 이제는 시스템 집약의 선박, 자동차 산업과 정보혁명을 일구어 내고 있는 반도체산업, 반도체를 이용하는 정보산업으로 발전하여 자연스럽게 산업사회와 정보사회가 가교되고 있다.
그러니까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그리고 지식정보사회로 변화하는데 유럽과 북미에서 300년 걸렸는데 우리나라에서는 5000년 역사중 최근 40년이 걸렸고 인기도의 변화도 농합분야에서 섬유, 화공, 기계, 전기, 전자, 재료, 컴퓨터, 정보통신으로 이어졌으며 이제는 NT, BT, CT등의 새로운 기술이 추구되고 있는데 전기, 에너지, 환경등의 3E가 정책적으로 충족되어야만 하게 되었다.
그리하기위해선 기술자들은 변화의 주역이 되거나 변화를 수용해야만 하는 대상이 되고, 전통기술은 더욱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학문의 유행, 즉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기술은 정지(停止)해 있는 것이 아니라 도태(淘汰)하고 만다.
이와같이 급속히 발전하는 기술을 이공계 출신 산업역군들이 어렵사리 익혀 중동지방의 건설현장이나 지방의 공장에서 고생했기 때문에 40여년만에 국민소득 80달러에서 1만달러시대를 이루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상대적으로 대우를 받지못하니까 IMF 위기가 몰아닥쳤고 8년동안이나 1만달러시대를 뛰어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공계를 우대하는 국가기술정책과 함께 학문적 유행에 치우치지 않고 세계적 경쟁력 있는 산업분야의 인력수급계획을 미래를 겨냥한 균형감각을 갖고 세워서 지속적으로 추진하여야 2만달러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은 역사가 있지만 기술자는과거가 없고 오직 창조만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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