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기대사는 가운데 삶의 의미 짚어
아무런 인연이 없는 이땅에 나는 어느날 갑자기 들어왔다. 그런데 시골땅은 나에게 묻지 않았다. 왜 이곳에 왔느냐고. 이 땅의 사람들도 나에게 묻지 않았다. 무엇을 하던 사람이냐고. 땅과 사람들은 그냥 나를 받아들였다. 마치 논이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듯. 시골은 낮은 땅이다. 들어오는 자를 내치지 않는.
땅 한 뙈기 없던 나에게 시골은 논밭을 내놓았다. 오랜 세월 이곳에 뼈를 묻고 살아온 사람들이 짓던 그 논밭을 나에게 내놓았다. 신용도 없고 담보도 없는,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선뜻 땅을 내놓았다. 시골은 낮은 땅이다. 없는 자가 발을 들일수 있는.
생전 농사 한번 지어보지 않았던 내손에 삽이 들렸고 호미가 들렸고 낫이 들렸다. 서툴기 짝이 없는 삽질, 호미질, 낫질, 그래도 땅은 나의 서투름을 탓하지 않았다.
-본문 중에서-
도시에서의 생활을 버리고 무작정 시골에 들어가 산지 4년. 그 4년간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은 책 ‘그래, 땅이 받아줍디까’(도서출판 강)가 출간됐다.
이 책에서 작가는 ‘왜 시골로 갔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4년간의 이야기를 통해 땅이 자신에게 가르쳐준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저 땅에 가만 기대어 살았다’고 말하는 저자는 땅에 대해, 흙에 대해, 고추에 대해, 뒷간의 행복에 대해, 똥의 고마움에 대해, 볍씨의 움에 대해, 햅쌀의 기적에 대해, 사람보다 나은 콩에 대해, 나무꾼의 사랑에 대해, 쥐가 가르쳐준 가난에 대해 말한다.
땅에 기대 산 보통 사람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이책에서 저자는 ‘땅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에게 어깨를 내어주는 낮은 곳’이라고 말한다.
‘그래, 땅이 받아줍디까’의 작가 한승오는 우리 시대의 보통 사람. 1960년 부산에서 나고 자라 386의 궤도를 따라 이삼십대를 서울과 그 주변에서 보냈다. 서울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출판사 경영이었다.
지난 2000년, 저자는 시골로 가기로 마음을 먹고 마침내 충남 홍성군 홍동면 구정리 고요 마을에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찾아 낸다. 그는 ‘시골로 귀농을 한 것이 아니라 좀 멀리 이사 한 것 뿐이었다’고 말한다. 사오년 비어 있던 집이라 마당에는 허리 높이까지 잡초가 우거져 있었지만 집 뒤편을 둘러싸고 있는 대나무 숲이 마음을 사로 잡았다. 그렇게 시작한 시골 생활이 이제 4년째를 맞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그 곳에 터를 잡고 이웃이 빌려준 땅에서 땀을 흘리며 땅에 기대 살고 있다.
단순히 땅에 대한 예찬론이 아니라, 자연과 벗삼아 사는 삶을 보여주며 바쁘게 사는 도시인들에게 삶의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도서출판 강. 240쪽.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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