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두께가 두터워져도 사람의 진실과 만나는 것, 생의 참다운 가치와 만나는 것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책은 한편 한편 묵직한 주제와 교훈, 삶의 철학을 담고 있지만 어렵게만은 읽히지 않는 것이 특징.
박완서와 환상의 콤비로 불리는 화가 김점선의 그림들이 책 곳곳에 삽입돼 있어 박완서 이야기들의 소소한 아름다움을 더욱더 아름답게 발산시키고 있다. 박완서의 표현을 빌면 ‘인디언 추장’ 같은 김 화백의 그림들은 대부분의 동화집에서 보여주는 구체성을 전혀 띠고 있지 않지만 다 전해 주지 못한 부분을 충분히 두루 보살펴 보여준다.
‘찌랍디다’는 여자를 박대한 시대 속에서 어린 신랑을 맞이한 신부의 현명하고도 재치 있는 혼인날의 대처를 통해 우리 선조들의 익살과 지혜를 유쾌하게 담아내고 있는 이야기. ‘보시니 참 좋았다’는 할아버지가 어릴 적에 그렸던 성당벽화가 하나의 훌륭한 작품으로 인정되기까지 그 능력을 알아봐주고 키워준 시선과 그림의 가치가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소중한 이치를 말해준다.
‘쟁이들만 사는 동네’는 환쟁이인 남편의 대작을 위해 목숨을 다한 아내와 대작을 위해 생명을 모조리 바친 남편이 그 아내의 죽음을 보고 숨을 거둔 이야기를 통해 천생연분이란 어떤 것인지를 들려준 아름다운 부부이야기. 곧 태어날 아기를 맞으며 엄마, 아빠, 할머니까지 새 생명의 탄생을 위해 준비하는 마음을 애잔하게 담아낸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일’ 등은 빛나는 보석처럼 아름다운 인생의 편린들이다.
이가서 출판. 167쪽. 9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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