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계의 큰 화두로 떠오른 ‘우리 역사 속에서의 근대성 찾기’나 얼마 전부터 TV에서 방송을 시작한 도올 김용옥 선생이 첫 강연시간에 근대화 시기가 없는 우리의 역사에서 왜 근대성을 찾으려고 하는가라고 일갈한 것은, 그 진위를 논하기에 앞서 오늘날 우리가 우리의 과거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관심은 굳이 위와 같은 학술적인 면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사회 전반적으로 보여 진다. 단적인 예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주인공이 들고 나온 이소룡의 쌍절곤으로 인해, 쌍절곤의 판매 수가 최근 엄청나게 늘었고 또 이소룡이 입고 나왔던 검정 줄이 있는 노란색 운동복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창 인기란다.
주말에 인기 있는 한 오락프로그램에서는 요즘 잘 나가는 젊은 연예인들 뿐 아니라 이제는 ‘옛 사람’ 혹은 ‘한물 간 사람’으로 취급받을 중견, 원로급 연예인들을 모셔놓고 한 섹션을 진행하는데, 그들의 입담과 진행자의 재치 있는 솜씨로 시간가는 줄을 모르게 한다. 오래된 물건들을 내 놓고 그것의 가치를 알아보는 프로그램도 인기인데, 물론 금전적 가치를 알아본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것 역시 최첨단을 달리는 요즘의 세태에서 잊혀진 옛 것을 찾는다는 점에서는 지금의 ‘옛것에 대한 열기’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예전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물건이나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 옛 것 혹은 옛 사람이 된 상황에서도 그 역할과 가치를 찾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시간이 지난 것이라고 시대의 뒤편에 놓여진 채 아무런 존재의미를 갖지 못한다면 이는 정말 아쉬운 일이다.
또한 그러한 옛것을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회의 전면을 이루는 모든 문화적 활동에서 어느 정도 제약을 받아온 장년층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은 대단히 긍정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TV나 영화관과 같이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매체에서 멀어졌던 중장년층에게 스스로 즐길 수 있고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 것은 우리 사회전반을 변화시킬 수 있는 혁명과도 같은 일이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복고 열기’가 한편으로 반갑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말의 두려움도 든다. 어렸을 적 나의 영웅들, 내 어린시절의 추억들이 방송매체에 등장하고,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보면 반갑고 기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단순히 그 촌스러움이나 신기함, 혹은 어울리지 않는 ‘부조화’로 인해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라면, 이는 대단히 아쉬운 일이다. 촌스러운 옛 것이나 옛 사람을 그냥 웃어넘길 대상으로 보기에는 그것 혹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시대적 중요성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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