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체 ‘소품문’ 1900년대초 소설에 영향
한국 근대소설의 뿌리가 18세기 후반 무렵에 생긴 ‘소품문(小品文)’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소장 국문학자인 우정권씨는 최근 펴낸 ‘한국 근대 고백소설의 형성과 서사양식’(소명출판)에서 “소품문이 갖고 있는 신변잡사적이며 일상적인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내면 감정의 솔직한 표현 등의 특성이 1900년대 ‘단문(短文)’이나 ‘보통문(普通文)’이라는 형식으로 계승됐다”고 주장했다.
특히 소설이라는 장르가 본격적으로 출발하기 전에 등장한 보통문은 수필, 일기, 편지 등 다양한 산문형식으로 1900년대에 널리 쓰였다. 이러한 보통문은 ‘태극학보’, ‘대한자강회월보’, ‘대한흥악보’ 등 학술지와 ‘학지광’, ‘청춘’, ‘소년’ 등 문예지를 통해 보급됐다.
저자는 “이덕무, 박지원, 유득공 등에 의해 사용된 소품문이 1910년대 현상윤, 진학문, 양건식 등의 단편서사를 탄생시켰으며, 이는 1920년대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나도향, 현진건 등의 근대소설을 낳았다”는 논리를 펼쳤다.
따라서 1920년대 한국 근대소설의 서사양식은 일본문학이나 외국문학의 영향이 아니라 조선후기의 전통적 서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근대소설은 외래문학의 영향에 자극받았다는 임화의 ‘이식문화론’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무엇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통적이고 자생적인 ‘고백의 서사양식’에 한국 근대소설의 특성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1920년대 이광수의 ‘어린 벗에게’, 김동인의 ‘약한자의 슬픔’, 염상섭의 ‘만세전’, 현진건의 ‘빈처’, 나도향의 ‘옛날의 꿈은 창백하더이다’, 조명희의 ‘땅속으로’, 최서해의 ‘탈출기’ 등은 작가의 체험과 전기가 그대로 담긴 작품들이다. 나중에 허구로 이행되는 작가들의 자전적 요소들은 근대소설에서 글쓰기의 원형이 됐다고 저자는 설명했다.
이러한 고백의 양식은 조선후기 소품문에서 비롯돼 1900년대 ‘한글 성경’의 보급에 따른 언문일치와 기독교적 고해성사, 국권상실과 3·1운동의 실패로 인한 지식인들의 내면성찰 등으로 이어지며 한국 근대소설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1930년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낳게 한 원동력은 고백소설 속에 담긴 근대적 미의식에 의한 것”이라며, 고백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로 1인칭 서술기법의 확립, 탈식민주의 의식의 문학화 등을 꼽았다. 292쪽.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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