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저녁, 서편 하늘 아래로 붉게 지는 노을을 바라보면 그리운 상념에 눈가에는 어느덧 영롱한 이슬이 맺힙니다.
방울진 이슬은 어느덧 복받치는 설움에 떨며 강물이 되어 버리고, 통곡하는 심령은 내 영혼을 휘돌아 처연함을 덧입혀주고 이내 사라집니다.
내 나이 만 3살이 되던 그 해, 제주도 최고 갑부인 김계담의 막내 딸로 태어나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당신은 서편 하늘 아래 노을이 지듯 방안에 온통 붉은 피를 쏟아 놓으시며, 불쌍한 아들 생각에 눈도 감지 못한 채, 32살 그 아리따운 청춘의 생을 마감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 충격이 너무 커서 지금도 나는 석양의 노을을 아름답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그 붉은 노을을 보면 그 날의 아픈 추억들이 몸서리치듯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그 덕분에 사춘기를 몹시도 심하게 앓았던 시절들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줄곧 반장에 당선이 됐고 전교어린이회장 출신이면서도, 중3이 되면서부터는 집밖에서 방황하기 시작했고 인생에 가장 중요한 황금기인 고교시절을 온통 혼돈과 공허로 암울하게 보낸 시절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어머니, 당신의 묘소는 저의 놀이터였고, 내 마음의 고향이었습니다.
당신의 묘를 끌어안고 잠이 들다, 날이 어두워 추워 떨며 산을 내려올 때면 더 추우실 당신을 두고 올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던 기억들이 많았습니다.
뒤돌아 보고 또 돌아보고, 그러다가 맺힌 눈가에 이슬은 항상 통곡으로 그렇게 강이 되어 흘렀답니다.
어머니,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당신의 이름인지 모릅니다. 학교가 파한 후 집안에 들어설 때면 제일 먼저 부르고 싶었던 이름 나의 어머니!
단 한번도 목청껏 부르지 못했던 그 소리를 불혹의 나이에 불러봅니다. 아, 어머니! 내 어머니!
참으로 영혼의 눈은 신비로운가 봅니다. 사무실 제일 한 가운데 걸어놓은 여고시절 교복을 단정히 입고 찍은 어여쁜 사진을, 오늘도 당신의 손자와 손녀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누구냐고 묻습니다.
먼 훗날, 당신의 손자와 손녀가 다 자란 뒤 사진속 주인공의 아름답고 짧았던 생애를 이야기 해주려고 아직은 비밀로 남겨 두었답니다.
그리운 어머니, 해맑은 가을하늘 아래 붉게 지는 노을을 이제는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픈 추억들은 저 멀리 뒤로하고 이제는 제게 주어진 시간과 공간안에서 지역을 위한 헌신과 사명들이 있기에 아름다운 인생의 가치들을 추구하며, 삶의 영위를 승화시키며 살겠습니다.
만일 이 생명 다하는 날 천상에서의 재회가 이루어진다면 제일먼저 당신의 품에 안겨 못다 부린 응석을 부릴 것을 약속드리며, 오늘도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어머니, 오늘 무척이나 당신이 보고싶습니다.
2003년 가을의 정서가 깊어 가는 11월에. 대전광역시의원 김재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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