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로맹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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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로맹 가리

  • 승인 2004-03-22 00:00
  • 최충식 논설위원최충식 논설위원
공쿠르상 2회 수상과 권총 자살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라는 아름다운 단편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죽음은 스물두 살의 열혈 청년이던 필자에게 비수처럼 꽂혔었다. 그보다 거대한 충격은 내가 삼십대에 알게 된 작품에 관한 진실성 때문이었다.

안데스 산맥 밑자락, 죽을 때 페루의 리마 해변을 찾는 수천 마리의 새들에 대한 묘사는 허무하나 아주 철학적인 질문을 내포한다. 새들의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기 전까진 그랬다. 작가는 엘니뇨 현상으로 멸치 떼가 오지 않아 새들이 굶어 죽는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권력과 리더십을 혼동했을 때는 불미한 오해의 지평이 열린다. "우리가 혁파하고자 하는 낡은 고정관념을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 저의 주변을 포위해 들어온다"는 대통령의 언론관은, 언론이 비열해서 비만 많이 와도 대통령을 비난한다고 말한 지미 카터의 대변인 조디 파웰을 연상시킨다.

그뿐 아니다. 오만과 편견을 자랑하며 대통령을 피로 물들일 궁리만 하는 마당에 어떻게 말이 통하겠느냐던 닉슨과도 사고의 틀이 통하고 있다. 그때부터 공직사회는 언론에 포위된 조직이 되고 국민과 분리된 양 착시가 일어난다. 멸치 떼와 새의 관계를 간과한 로맹 가리처럼 현상을 헛짚은 결과다.

대통령은 또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데 어느 쪽을 비추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며 "언론이 비춰주지 않으면 스스로 발광(發光)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왜 매체들이 원하지 않는 구석을 비추느냐를 따져보는 게 순서다. 본의든 아니든 언론이 편견을 조장한다고 보면 드라마를 닮긴 했다. '대장금'에서 여주인공 서장금의 주위를 도는 종사관을 보고 조선시대 종사관은 모두 멋지다고 단정해버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지금 대통령은 김정일 호감세력이 대통령 지지자라는 말까지 듣고 있지만 워낙 통합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자리인지라 흥분을 감출수록 좋다. 백설공주를 죽이는 객기도 버려야 하며 만약 왕비의 마술거울 같은 게 있다면 깨뜨리는 편이 낫다. 아니면 토론의 달인답게 "네가 나보다 예뻐서 나 죽겠으니 멀리 떠나달라"고 설득이라도 해야 한다. 정 안 되면 목에 안 걸리는 사과주스를 먹이든지 할 일이다.

무엇보다 큰 오해는 대통령의 리더십을 사적인 권력행사로 착각하는 것이었다. 10분의 1 발언, A당 찍으면 B당 돕는다는 돌출 발언들은 평범한 시민의 정서로 낮은 대통령으로 임하려는 구상과도 거리가 멀다. 대통령의 말은 이미 추상적인 권력을 내포한다. 오디세이아에서 제우스의 말을 전하는 오사 아겔로스의 말이 한 개인의 말을 능가했던 것에 비긴다면 비약일까?

다시 로맹 가리로 돌아가서, 사십대 후반의 나는 원점으로 회귀했다. 그의 시각이 더 공정할지 모른다는 사고의 변이, 이걸 언론에도 적용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더더구나 순천향대 장호순 교수의 입을 빌린 내 생각은 이렇다.

"공정한 보도란 원래 편파적 보도다. 약자의 입장을 옹호하는 보도가 바로 공정한 보도이기 때문이다. 강자와 약자가 대립하는데 강자의 편을 든다거나 중립을 지키는 보도는 불공정한 보도다."

결론은 명확하다. 대통령부터 언론에 대한 편견, 대통령직(presidency)에 대한 편견을 버릴 일이다. 비판을 삼간다는 야당 총재에 대한 화답으로라도 대통령으로서 말을 아껴야 사리에 맞다. 태평양 난바다에서 죽을힘을 다해 날아온 새들이 끝내 버리지 못할 희망으로 죽어 간다는 로맹 가리의 관찰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오해의 영역이다. 대통령의 경우는 예술가의 그것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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