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식을 지켜내려 한다. 이를 자신의 유전자를 자자손손 보존하려는 '이기적인 유전자' 탓으로 돌리는 견해도 있다. 생물은 같은 종끼리는 물론 다른 종 사이에도, 때에 따라 동·식물 사이에도 상호 의존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다. 이 의로운 연대에서 인간만이 열외(列外)일 수는 없다. 찰스 다윈이 진화론을 연구한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기름 묻은 날개를 뱃머리에서 말리는 새를 보고 이렇게 쓴 적이 있다. 그 펠리칸 한 마리의 고독은 정작 우리 인간의 것이어야 한다고―.
우리가 정치판에 골몰하는 사이에 연례행사처럼 폐사하거나 탈진한 독수리들이 속출하고 있다. 한국조류협회 김성만 회장에 따르면 지난 보름새 파주와 양주, 제천, 군산 등지에서 발견된 독수리 중 19마리는 죽고 2마리는 자연의 품에 날려 보냈다. 현재 보호 중인 30마리의 안부를 물으니 빠른 속도로 호전되고 있다고 한다. "일단 먹이만 줘도 잘 살아나요. 괜찮을 것도 같네요만…." 그는 매스컴에서 독수리를 대머리수리라고 하는 것이 못내 불만이다.
어쩌다 우리 산하가 독수리의 먹이가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는지 모르겠다. 가끔 철새 황새를 보면 차라리 밀렵꾼들이 쏘아 놓고 '비둘기인 줄 알았다'고 시치미떼던 시절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마 생태계의 균형을 잡아주던 먹이 사슬의 파괴되어 사람이 먹이를 줘야 할 처지다. 요즘엔 닭이나 돼지를 직접 한강로 신용산역 1번 출구 가까이에 있는 사무실로 가져오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한다.
과거 한강이나 낙동강, 갈대밭이든 갯벌이든 안 가리던 독수리들이 개발이란 이름의 파괴와 건설을 못 견뎌 비무장 지대까지 이르렀다. 남북이 갈려 독수리의 피신처가 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 이 민족의 희비극(喜悲劇)에 대해 김 회장은 "살 만한 곳이 민통선 부근밖에 더 있어야죠"라며 허탈하게 웃는다.
그런데 독수리 폐사에는 이상한 먹이사슬이 존재한다. 독극물을 바른 볍씨를 먹고 기러기나 가축이 죽는다. 그 가축을 독수리가 먹고 죽고 그 독수리는……. "독수리가 독수리를 먹나요?" "그럼요. 죽기를 기다려요. 죽자마자 달려들어 뜯어 먹습니다." 독수리들의 동족상잔에 대한 김 회장의 생생한 증언인 셈이다.
독수리는 겨울나기를 위해 11월 중순부터 몽골에서 남하해 이듬해 3월 중순 북쪽으로 되돌아간다. 그 수백 마리 중 수십 마리는 희생을 당한 채. 그 용맹스럽던 독수리가 밥찌꺼기를 얻으려고 양돈장이나 양계장을 기웃거리는 신세가 됐다. 야생동물의 수를 조절하는 게 먹이사슬이 아니라 인간의 손길이 돼버린 현실이 업보처럼 느껴진다. 독수리들이 무사히 겨울을 나고 이 땅을 떠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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