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병(切餠) 같은 부인은 어디 두고 누추한 종년의 방에 오셨나이까?”
“넌 산갓김치 맛이니라.” (흰떡은 산갓김치와 함께 먹어야 제 맛이다.)
데이트를 마친 정승은 돌계단에 앉아 볼기를 차게 한 다음, 방으로 들어와서는 뒷간에 다녀온 양 배가 아프다며 온갖 능청을 떨었다. 바로 그때 부인 왈, “산갓김치를 혼자 드셨으니 배가 아프시지요” 했으니 여북이나 놀랐을까, 정승은 이후로 다시는 바람을 피지 않았다.
강짜 한번 안 부리고 남편의 바람기를 잡은 정승 부인은 겨울밤 고구마와 함께 먹는 백김치 맛이리라.
역사를 더듬으면, 태조 왕건과 목포 근방 빨래터에서 만나 꾀를 부려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이 임금의 자리에 앉는 데 일조한 오부인은 알맞게 절인 장김치다. 우물가에서 버들잎을 띄워준 고사의 주인공으로, 왕건의 결단을 도와 킹메이커로 결정적인 몫을 한 류씨부인에게선 담백한 물김치 맛이 풍긴다.
힐러리 클린턴은 퍼스트 레이디에서 상원의원으로 말을 갈아 탈 만큼 남다른 권력욕의 소유자이다. 그녀는 남편과 주머니도 따로 차고 다니는 교회도 다르다.
설문 결과, 우리 국민이 가장 원하는 대통령 부인상은 육영수 여사와 힐러리 클린턴을 합친 모습이었다. 하마터면 백악관에서 쫓겨날 뻔했던 수치스런 파문을 휘잡아 냉철하게 수습한 그녀에게선 빌러리(빌 클린턴+힐러리)라는 별명이 시사하듯 보쌈김치 맛이 난다.
현재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인 로라 웰치 부시는 집안의 무게와 부담을 못 견뎌 술, 마약, 여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난봉꾼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부시 대통령이 “내 일생에서 가장 잘한 일은 로라와 결혼한 일”이라고 했을 정도니 그림자처럼 요란 떨지 않고 내조하는 그녀는 옥김치를 연상시킨다.
대선 후보 부인들도 참석한 한국여성언론인연합 주최의 한 토론회에서는 으뜸가는 대통령 부인상으로 재클린 캐네디의 인기와 엘리너의 역량이 겸비된 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소아마비에 걸린 남편의 다리 역할을 한 엘리너 루스벨트는 갓김치 맛, 문화예술에 폭넓은 혜안을 가진 재클린 케네디는 통배추김치 맛일 듯 싶다.
그렇다면 차기 대통령 당선자의 부인은 무슨 맛을 낼까? 포기김치, 열무김치, 통배추김치, 백김치, 섞박지, 나박김치, 겉절이, 장김치, 고들빼기김치, 파김치…. 그 판단은 좀 뒤로 유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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