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의 원조격인 밸런타인데이(2월14일). 사랑하는 젊은 연인들을 황제의 허락 없이 결혼시킨 죄로 순교한 사제의 제삿날이다.
그리하여 아류 기념일은 새끼치기를 계속한다. 밸런타인이나 화이트데이(3월14일)에 아무것도 못 받은 남녀가 자장면을 먹는 블랙데이(4월14일), 자장면도 못 먹었으면 홀로 카레(커리)를 먹는 옐로데이(5월14일) 등등.
1년은 다이어리를 주는 다이어리데이(1월14일)로 시작해 '14일'마다 더부살이하는 키스데이(6월), 실버데이(7월), 그린데이(8월), 포토데이(9월), 와인데이(10월), 오렌지데이(11월)를 거쳐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왕창 쓴다는 머니데이(12월)로 마감된다.
이러한 극성스러움을 날짜 마케팅에 활용하는 기업도 늘어났다. 국민카드는 지난달 연인용 14일애(日愛) 카드를 만들었고 비씨카드는 토․일요일과 국․공휴일에 수수료를 면제하는 '빨강 파랑 대축제'를 펼친다. 회사 관계자는 "특정일에 서비스를 집중하니 홍보․마케팅면에서 유리하다"고 밝혔다.
또 신한카드는 12월말까지 369 이벤트를 실시한다. 인디안밥 게임을 본떠 3, 6, 9가 들어가는 날 주유하는 고객에게 리터당 100원을 적립해준다. "마일리지 5천점이면 상품 또는 현금으로 돌려주는데 호응이 기대 이상"이라는 게 이 회사 이민정 상담원의 전언이다.
지난달 24일은 둘이서(2) 사과하는(4) 애플데이였다. ‘비는 장수 목 못 벤다’고, 사과(어팔러지)를 사과(애플)로 풀어 화해시킨다는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의 아이디어는 풋풋하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면 날짓기는 변별력만 중시되는 학교생활, 딱딱한 사회생활을 잊게 하는 측면이 있다. 애교스런 고백을 호화판 축제로 변질시킨 쪽은 어른들이었다. 대전YWCA 진숙 간사는 고가의 선물 바구니를 예로 들며 "작은 것, 사과 한 알로 우정을 나누는 순수한 마음을 왜곡시키는 어른들의 상술"을 개탄했다. 동감이다.
돌아오는 14일은 무비데이이기도 하다. 잊지 말자. 연인과 영화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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