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남자의 계절인가 보다. 온도와 습도가 내려가 피부에 자극을 주고 간뇌의 각성중추를 자극해 의식을 깨운다? 이런 의학적 설명은 외로워 옆구리가 시린 사람에게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마치 추울 땐 난로나 찐빵이 최고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봄엔 여자가 사색을 하고 가을엔 남자가 우울하다는 뜻에서 춘녀사 추남우(春女思秋男憂)라 했다. '여인이 봄을 품었는데 미남자가 그녀를 유혹한다'는 시경 구절에서는 춘기, 즉 사춘기라는 말이 생겨났다.
일본의 심리학자 가와이는 생의 가을을 느끼는 초로의 시룽새룽함을 싸잡아 '사추기(思秋期)'를 만들어냈다. 어느날 사랑의 보금자리가 텅 빈 공소증후군이 밀려오고, 그래서 뒤늦은 사랑앓이를 겪기도 한다.
굳이 화엄경을 믿지 않아도 좋다. 일천 겁의 인연으로 같은 땅에 태어나고 이천 겁의 인연으로 하루를 동행한다. 일 겁은 선녀가 버선발로 내려와 춤을 출 때 바윗돌 하나가 닳아 없어지는 시간! 하물며 소중한 사람끼리 살을 맞대는 지금은 얼마나 어마어마한 인연인가.
최소한 올 가을엔 틱낫한이 "우리의 마음은 밭이다"고 넌지시 일러주는 음성을 듣고 그 밭에 무슨 씨앗을 뿌릴까를 고민하자. 바람 한 소절에 흔들리며 꽃이 되는 구절초처럼, 떨어진 자리가 고향인 코스모스처럼 살자.
포도주와 사랑은 묵을수록 맛있다. 이 말을 입증하려 당신이 로맨티스트일 필요는 없다. 무서리가 내리기 전에 아내에게, 남편에게, 연인에게 연서 한 장 보내고 우체부 아저씨를 학수고대했던 청춘을 되돌리자. 떠나지 말자. 특히 멀리 떠나진 말자.
"가을에 떠나는 사람에겐 '빠떼루'를 줘야 합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